[하우투] 남산예술센터의 극장 드라마터그

극장 운영의 또 다른 전문성

이양구 _ 극작가, 연출가

남산예술센터는 국내의 창작 초연 희곡을 무대화한다는 원칙을 공표하고 현재도 그러한 원칙 하에서 움직이고 있는 극장이다. 초연 희곡이 남산예술센터 공간과 효과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고 해결해 나갈 사람이 필요했고, 그 결과가 극장 드라마터그 제도의 도입이다.
 

지난 해 12월 남산예술센터가 극장 드라마터그(dramaturg) 제도를 도입, 그간 남산예술센터의 개별 작품에서 드라마터그로 참여한 적이 있는 연극평론가 조만수, 김주연 2인을 극장 드라마터그로 선임했다. 드라마터그가 전속 형태로 극장 운영에 참여하는 것은 국내에서는 처음 있는 시도로, 극장 운영방식의 새로운 변화를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남산예술센터

남산예술센터

필수 과제의 이행

개별 극단이나 프로덕션도 드라마터그를 두는 것은 일반적이다. 이 경우 드라마터그의 역할은 레퍼토리 작품을 찾아 추천하거나 대본을 각색하기도 하고, 희곡 해석에 필요한 자료를 조사하고 리허설에 참여하여 연출가를 보조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다. 연출가들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희곡을 해석하고 공연을 만들어가는 데 드라마터그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드라마터그는 캐스팅에 관여하는 경우도 있으며, 외국의 경우 공동저작권자로서의 지분을 인정받은 사례도 있다.

그러나 남산예술센터가 도입한 극장 드라마터그 제도는 기존의 개별 드라마터그와는 차원이 다르다. 남산예술센터에도 재개관작 <오늘, 손님 오신다>를 비롯하여 개별 작품에 관여하는 드라마터그는 계속 있었다. 남산예술센터는 국내의 창작 초연 희곡을 무대화한다는 원칙을 공표하고 제작하는 극장으로, 개별 작품에 대한 해석을 뛰어넘어 극장의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제 역할을 수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시 말해 초연 희곡이 남산예술센터이라는 공간과 효과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고 해결해 나갈 사람이 필요했고, 그 결과 극장 드라마터그 제도의 도입에 이른 것이다.

새로운 역할 분담

남산예술센터는 한 해에 대략 4~5편 정도의 자체 제작 공연과 4편 정도의 공동제작 작품을 극장에 올리며, 상주극작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간 공동제작 작품의 경우 서울문화재단의 공모 프로그램을 통해 결정되었으며, 공연의 예술적 책임은 개별 극단이 책임지고 극장은 서포터로서 역할이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극장 드라마터그가 공모 심사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물론 극장의 의견이 전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구조는 아니지만 극장 드라마터그는 외부 심사위원과 함께 공동제작 작품과 극작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자체 제작 공연의 경우, 올해 작품들은 이미 결정되었지만 앞으로는 극장 드라마터그가 레퍼토리의 선정, 극작가 및 연출가 선정은 물론 캐스팅의 과정에도 참여하게 된다. 이런 과정들이 극장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어떻게 세우고 발전시켜나갈 것인가 하는 과제와 직접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남산예술센터는 사실상 제2기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09년 (구)드라마센터를 재개관하면서 남산예술센터는 공공극장으로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고민 끝에 동시대성(Contemporary)과 뉴웨이브(New Wave)를 모토로 내세웠다. 이는 남산예술센터가 한 시대의 대표성을 드러내는 일보다는 특정한 임무에 주력하겠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한데, 현재는 이러한 모토 중 '뉴웨이브'를 괄호 안에 넣어버렸다. 텍스트 중심의 극장을 표방하면서 텍스트의 소멸을 주장한 뉴웨이브를 함께 끌어안는 데 난점이 있었고, 한편 '동시대성'이라는 개념 안에 형식의 새로움을 품고 동시대에 텍스트 중심의 연극은 무엇인지, 남산예술센터의 중심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계속해서 고민해 가려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으로 지난달에 개최한 남산연극포럼 '동시대성, 동시대적 텍스트, 동시대적 연극'과 같은 방식의 공론화 과정을 밟고 있다.



상주극작가의 낭독공연 <잊혀진 부대>(동이향 작) 상주극작가의 낭독공연 <풍찬노숙>(김지훈 작)
상주극작가의 낭독공연
<잊혀진 부대> (동이향 작)
상주극작가의 낭독공연
<풍찬노숙> (김지훈 작)

기존 공모방식에서는 불가능한

남산예술센터가 극작가를 만나고 장기레퍼토리를 개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현재 한국연극계에서 일정한 수준을 갖춘 창작희곡을 찾아내는 창구는 희곡공모이다. 그러나 공모전을 통해 등장하는 작품들은 이미, 일정한 완성도는 보장되어 있을지언정, (기존 연극) 문법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남산예술센터가 만나고 싶은 작품은 기존의 문법에 비추어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아니라, 새로운(실험적인) 글쓰기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 요컨대 동시대성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작품이다. 극장 측은 기존의 희곡공모 방식으로는 그런 작가를 만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판단, 이러한 만남이 가능한 상시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임무를 갖는 극장 드라마터그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극장이 동시대성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극작가와 상시적으로 만나고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기존의 방식에서 진일보하여, 가령 기존의 독회공연보다 더욱 초보적인 방식부터 시작하여 장기레퍼토리로 갈 수 있도록 작품의 개발 단계를 좀 더 세분화하고 시스템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 역시 극장 드라마터그의 역할이다. 이러한 과정에 참여하려는 작가에게 좋은 희곡으로서의 문법이나 기존의 명성 따위는 요구하지 않는다. 요컨대 극장 드라마터그는 남산예술센터와 맞는 작가를 상시적으로 만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극장이 이러한 작가를 견인할 수 있는 새로운 글쓰기의 장이 되도록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남산예술센터는 무대가 객석보다 아래에 있는 등 개방형 공간으로 지금까지 한국연극의 주류를 형성해 온 사실주의적 스타일의 공연과는 잘 맞지 않는다. 남산예술센터는 연출가들에게 특권을 쥐어주는 공간이었는데 이곳을 극작가 위주의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하니 모순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 남산예술센터는 새로운 글쓰기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공간으로서 적합하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동시대성에 대한 극장의 고민은 연극과 문학의 접점을 찾기 위한 고민과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극장을 통해서 새로운 연극과 문학의 인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담론이 뒤섞일 것이라는 기대다.

 



2012 남산예술포럼 조만수 극장 드라마터그
2012 남산예술포럼 조만수 극장 드라마터그

고민 또 고민

남산예술센터가 도입한 극장 드라마터그는 국내에는 아직 선례가 없는 제도이다. 물론 국내에도 해외에서 드라마터그를 전공한 사람들이 있지만 아직은 대학에서 이론적인 소개를 하거나 개별 극단의 작품에 참여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고, 극장의 정체성 결정에 참여하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극장의 정체성을 정하는 문제는 여타 극장들에도 예술감독제 등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남산예술센터의 경우 이 과제가 극장 드라마터그의 도입으로 나타났다.

이제 남산예술센터의 극장 드라마터그는 극장이 정체성과 방향성을 세우고 여기에 적합한 극작가와 만나기 위한 상시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주력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행보는 극장의 정체성과 방향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여타 극장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의 첫 시도에 걸맞게 남산예술센터의 이번 시도를 통해 개별 프로덕션이든 극장에서든 드라마터그의 역할에 대한 매뉴얼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이양구 필자소개
이양구는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되어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혜화동1번지 5기 동인, 극단 해인의 대표 및 연출가로서 연극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중앙대 연극학과, 신흥대 미디어문예창작과에서 강의도 맡고 있다.
yi-yanggu@hanmail.net
 

 

weekly 예술경영 NO.167_2012.03.15 정보라이선스 정보공유라이선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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