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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여 년간 세계에는 두 가지 큰 흐름이 진행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정보화와 세계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항상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자본주의 내 경쟁 수준이 높아지고 있고 동시에 사회적 갈등도 증폭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위기를 해소하거나 혹은 완화하기 위해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적 경제 체제로 사회적 경제와 친환경을 주장하는 흐름이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두 가지 흐름 모두가 공통적으로 부르짖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혁신이다. 이윤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들은 물론이고, 세금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 부문과 정치도 혁신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 갈등 해결을 요구하는 쪽에서도 사회적 혁신이 나아갈 방향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들 모두 '지금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고 변화를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왜 이렇게 혁신에 매달리는 것일까? 세계화와 정보화로 인해 경제 및 사회적 주체들이 경험하는 경쟁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지속 가능이 문제시되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업들 간에 경쟁이 심해지면서 기존의 상품과 서비스, 조직 운영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 도래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제적 부가가치가 필요해졌다. 공공부문에서는 국민의 세금으로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의 효율성과 효과가 떨어져 세금을 내는 국민들의 만족도가 떨어져,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조직, 서비스 내용 및 방법 등을 혁신해서 새로운 공공적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사회적 변화를 주장하는 영역에서는 기존의 방법, 조직, 내용으로는 지속 가능한 사회적 변화를 가져오기 힘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혁신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2010년 혁신에 관한 보고서에서 혁신 과정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고 주장했다. 혁신과 함께 혁신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40년대 경제학자인 슘페터(Joseph Schumpeter)가 이야기한 혁신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혁신기업가(entrepreneur)의 역할이 최근 전 세계적으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미래의 혁신을 이끄는 것은 창의성
문화예술 분야는 어떨까? 적어도 우리나라 문화예술계는 혁신이라는 말을 빈번하게 사용하지는 않는 듯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혁신은 왠지 정보통신 분야와 같은 기술적 분야 혹은 공공부문 등에 어울리는 말로 인식된다. 또한 혁신은 기존 방식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외적인 힘으로부터 요구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개성과 독창성이 중요시되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누군가에 의해 요구되는 혁신은 생리적으로 거부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문화예술 분야에서 과연 혁신의 의미는 무엇이고, 얼마나 필요할까? 예술가와 혁신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2013년 1월, 전 세계 혁신과 관련된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컨설팅 기업인 딜로이트(Deloitte)가 전 세계 밀레니엄 세대(1982년생 이후 세대) 중 대학을 졸업하고 정규직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4,982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혁신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우리나라에서도 310명이 응답하였다.
설문조사의 항목 중 하나가 "현재 당신을 혁신적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지문 없이 자유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질문에 대하여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전 세계 응답자들의 절반 가까이 현재 혁신의 핵심 요소로 창의성을 지목하였다.
자료 : Deloitte(2013), Millennial Innovation Survey
▲ 사람을 혁신적으로 만드는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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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질문과 유사하게 미래 관점에서 혁신의 요소에 관하여도 물어보았다. "향후에 혁신가가 되려고 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특성 혹은 능력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도 응답자 5명 중 3명은 창의성과 기획력이라고 대답하였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현재 혁신가의 모습뿐만 아니라 미래 혁신가의 모습에서도 창의성이 핵심적인 요소가 될 것임을 암시해준다.
문화예술 분야는 창작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은 물론, 절대적으로도 사람의 창의성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영역이다. 문화예술의 결과물은 물론 과정도 창의성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만들어지기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문화예술 분야는 현재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혁신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창의성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예술 분야에서 만들어지는 창의성이 사회 각 분야의 혁신으로 연결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 각 분야는 각기 다른 구조와 기반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으며,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의 구성 또한 유사하지 않다.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문화예술 분야의 창의성이 다른 분야의 혁신에 접목될 수 있게 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문화 혁신기업가가 이 역할을 할 수 있다.
문화 혁신기업가는 문화와 타 분야를 잇는 다리
문화 혁신기업가(cultural entrepreneur)가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영국 브리스틀(Bristol)의 워터셰드 미디어 센터(watershed media center)로 가보자. 워터셰드는 1982년 브리스틀(Bristol) 해안가의 창고를 개조하여 만들어진 공인된 자선단체이며 동시에 사회적기업이다. 워터셰드의 핵심 활동 영역은 영상을 활용한 소통(Watch), 친환경 지역 농산물로 구성되는 레스토랑과 바(Eat), 컨퍼런스와 레지던스(Meet),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놀이(Play), 이렇게 보고, 먹고, 만나고, 노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만들기(Create)이다. 워터셰드는 다섯 가지 활동을 통해 기존 지역 문화예술 센터들이 공공의 지원을 받아 높은 비용이 소요되는 훌륭한 건물들을 지어 문화예술 감상이나 교육을 담당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문화예술 서비스를 바탕으로 기술 및 산업, 교육과 융합을 이룸으로써 '창의성의 확산'이라는 사회적 목적과 함께 경제적 자립을 통한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충족하고 있는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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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터셰드 미디어 센터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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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워터셰드 미디어 센터의 이러한 노력과 성공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은 조직 내, 조직 간 다양한 수준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문화 혁신기업가(cultural entrepreneur)들이다. 이들은 개별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큐레이터이기도 하며, 창의적 아이디어와 디지털 첨단 기술을 이어주는 중개인이기도 하다. 이들은 워터셰드에 모인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디지털 미디어 전문가, 관련 회사들과 관객들이 놀고 창작하는 공간에서 협력하면서 실험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원하는 조력자들이다. 또한 '윈(WIN, Watershed Innovation Network)'이라는 혁신 네트워크 안에서 열린 협력이 활성화되도록 하고, 창의 영역과 지속 가능 영역을 오가며 두 영역의 중개자 및 다른 분야 사람들 간의 소통을 조율하는 조정자 역할도 수행한다.
워터셰드 사례는 우리에게 문화 혁신기업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문화 혁신기업가는 다양한 영역에서 자유롭지만 고립되어 일어나고 있는 창의적인 예술적 시도와 담론들을 혁신 활동을 통해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묶어내는 일을 돕고, 이렇게 묶인 창의적 시도들이 구체적인 결과물이 되어 공유되고 산업과 시장과 만나 확산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한 그 결과물들이 다시 일상적이고 창의적인 시도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연계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우리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창의적 시도들 간 융합이 가능하며, 이것이 다시 혁신의 기반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커가고 있는 창의적 혁신 요구에 대해 가장 응답을 잘할 수 있는 분야는 문화예술 분야이며, 이를 위해서는 문화예술 각 장르, 예술가와 관객, 문화예술과 기술 및 타 산업, 창의성과 지속가능성 간을 연결하고 조정하면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상품(작품) 및 서비스로 연결시킬 수 있는 문화 혁신기업가가 필요하다.
관련자료
'밀레니얼 혁신 설문조사(Millennial Innovation Survey)' (Deloitte, 2013)
'혁신 전략(Innovation Strategy)' (OECD, 2010)
';워터 셰드의 문화혁신 생태계(Producing the Future Understanding Watershed's Role in Ecosystems of Cultural Innovation)'; (Graham Leicester and Bill Sharpe,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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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욱
황준욱은 서울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았다. 프랑스 파리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한국에 들어와 기획예산처, 노동연구원을 거치면서 정부 혁신을 기획하고 문화예술노동을 연구했다. 2010년대 제주도에 입도하여 연구 활동과 발효식품 개발을 하고 있다 블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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