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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규원_한국문화관광연구원 콘텐츠산업경제연구센터장
문화예술 분야의 용어들은 개념이 다중적이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기로 유명하다. 문화와 예술이라는 용어부터가 정의하고 해석하기 어려운 단어이다. 여기에 다른 단어가 붙어 문화향수나, 예술향유, 문화매개가 되고 더 나아가 정치적으로 파생된 단어가 추가되어 문화중흥, 문화융성까지 나아가면 이제는 해석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른다. 정책 단위에서는 대상과 주체를 명확히 하기 위해 이러한 단어들을 끼워 맞추기 식으로 정의하게 되는데 이것도 못할 노릇이다. 문화기본법의 경우 유네스코의 문화의 정의와 기타 여러 국외 정의와 국내의 가치를 생각하여 ‘문화’를 정의하기도 하지만, 문화예술진흥법처럼 장르의 합으로 정의하는 경우도 있다. 문화와 관련한 단어들은 이렇듯 법정 정의를 통해 협의의 정의로 국한되고, 이 과정에서 원래의 단어가 가지는 생명이 거세된, 딱딱하고 축소된 정의만 남게 된다. 문제는 법적 정의가 원래의 포괄적인 개념을 모조리 대체해 버려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논의의 여지들을 잘라 버린다는 것이며, 이 정의가 현장에 ‘행정’ 중심으로 실행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생활문화’라 볼 수 있다. 이번 자료읽기에서는 2000년대 이후 자료들을 순서대로 짚어 보며 생활문화에서 생활예술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생활문화에 대한 본연의 개념을 견지하고 만든 대표적 사례는 인류학 분야의 민족지(民族誌 ethnography) 등이다. 일례로 ‘국립민속박물관 학술총서’에서 발간된 『한인 동포의 생활문화』 시리즈를 볼 수 있는데 그중, 『미국 하와이지역 한인동포의 생활문화』는 생활문화를 ‘지역사회의 구조’, ‘가족과 친족생활’, ‘직업과 경제생활’, ‘의‧식‧주생활’, ‘생활용구와 생업용구’, ‘종교생활’, ‘언어생활과 교육’, ‘세시풍속과 여가생활’로 구분하여 조사하였다.
이렇듯 삶의 전반에 걸친 광의의 ‘문화’와 동일시되던 생활문화는 어느새 문화예술 정책의 대상으로 삽입되며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사실, 1990년 문화부가 발족하던 시점의 ‘문화’는 생활문화라는 의미가 강하게 포함되어 있던 정책 개념이었다. 그러다가 지역 ‘공동체’ 개념이 강조되며 별도의 용어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업이 ‘문화공동체’에 이어 추진된 ‘생활문화공동체’이다. 문체부는 시범사업(2009년부터) 기간을 거쳐 25개 지역에서 ‘2011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생활문화’가 구체적인 정책 개념으로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개인의 삶을 풍부히 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 의식 및 지역 내 유대 관계를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주민의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문화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라는 목적을 내세웠다. 이 사업은 2011년 한국문화원연합회 주관, 복권위원회 후원으로 시작되었으나 2012, 2013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주관으로 바뀌어 “문화예술 활동으로 자신과 이웃을 재발견하고, 공동의 비전과 가치를 창출하며 실행하는 활동 과정을 통해, 소통과 교류로 생활문화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으로 바뀌어 추진되었으며 다시 한국문화원연합회 주관으로 추진되다가, 2017년 생활문화진흥원, 현재는 지역문화진흥원 주관 사업으로 추진된다. 이 사업을 계기로 2014년 7월 29일 시행된 ‘지역문화진흥법’에 생활문화가 주요 정책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법에 의해 생활문화는 “지역의 주민이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하여 자발적이거나 일상적으로 참여하여 행하는 유형·무형의 문화적 활동”이라고 정의하게 되었다.
주관기관 | 추진연도 | 사업 목적 |
한국문화원연합회 | 2011년 |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개인의 삶을 풍부히 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 의식 및 지역 내 유대 관계를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주민의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문화 활동을 지원 |
한국문화예술 교육진흥원 |
2012년~2013년 | 문화예술 활동으로 자신과 이웃을 재발견하고, 공동의 비전과 가치를 창출하며 실행하는 활동 과정을 통해, 소통과 교류로 생활문화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 |
한국문화원연합회 | 2014년~2016년 | 문화예술 활동을 매개로 공동체 문화회복 및 지역의 변화 유도, 지역주민의 일상 속 문화 향유 기회 제고 및 문화적 격차 해소. 문화를 매개로 한 생활문화공동체의 구축 및 발전을 위한 다양한 모델을 개발하고, 타 지역으로 자발적 보급·확산 기대 |
생활문화진흥원 | 2017년 | 문화소외지역을 대상으로 지역주민들의 문화예술 수요에 맞춘 일상의 생활문화를 통해 많은 이들이 문화향유의 기회를 갖고, 마을 안에서 자생적인 문화생태계와 마을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 |
지역문화진흥원 | 2018년 | 생활문화를 매개로 한 지역공동체 회복을 통해 문화소외지역의 문화적·사회적 격차를 해소하고, 문화공동체 활동을 통한 주민 스스로의 일상적 문화활동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지원 |
2019년 | 주민 문화 공동체 활동 확산을 통한 지역관계망 형성 및 마을 활력 도모. 주체적 생활문화 활동을 통한 문화적, 사회적 삶의 질 제고 |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지원사업의 변화
생활문화공동체 사업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지난 성과 및 아카이빙 보고서를 참고하는 것이 중요한데 대표적인 자료로는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 사업 10년 성과평가』를 들 수 있다. 사업 주관 단체의 성격에 따라 생활문화의 의미나 사업의 성격이 변하게 되었다. 또한 생활문화라는 단어 자체가 법적 항목에 도입되면서 이를 다루는 사업과 기관의 위상이 달라져, 생활문화 사업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지역문화진흥법 시행 이후 생활문화는 각종 토론회, 정책 공모사업, 정책 보고서의 총아가 되는 시기로 넘어간다. 이때 중요한 토론회가 열리게 되는데 바로 <생활문화예술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다. 2014년 열린 이 토론회는 지역문화진흥법이 시행되기 전이기는 하지만 ‘생활문화’가 아닌 ‘생활문화예술’을 처음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행사로 꼽을 수 있다. 당시 토론회는 1부 ‘생활문화예술의 부상과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의 모색’과 2부 ‘생활문화예술진흥전략 및 정책과제 발굴’을 주제로 구성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1부 강윤주 교수가 ‘생활예술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시민성, 지역성, 예술성’이라는 제목으로 생활예술과 생활예술 정책을 상세히 제시했던 반면, 라도삼 연구원은 ‘생활문화예술 정책현황과 과제’라는 주제로 오히려 생활예술에서 ‘예술’의 한계를 제시하고 공동체 안에서의 생활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토론 자료집은 이후 전개되는 생활문화와 생활예술 사이의 구분과 중복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구체적인 답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토론회에서 논의한 문제들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이후부터는 지역문화진흥법의 제정과 시행 이후로서 ‘생활문화’ 중심의 정책 보고서들이 이어진다. 대표적인 것은 2015년 조광호의 『생활문화 활동조사를 위한 기초연구』와 이어지는 2016년 『생활문화 활성화를 위한 정책기반 구축방안 연구』를 들 수 있다. 조광호의 연구는 지역문화진흥법상 생활문화에 관한 최초 정책 보고서로 법적 용어로서의 생활문화를 정책적으로 세부 정의하였으며 나아가 현재까지 생활문화 관련 정책과 활동의 기초 조사를 하였다. 특히 생활문화를 이론적·실제적 정의를 구분하였고 생활문화의 범위 구분을 ‘생활예술’, ‘생활기술’, ‘생활교류’, ‘생활기타 분야’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구분과 개념 정의는 이후 대부분 관련 보고서, 연구에서 언급되고 있다. 한편 해당 연구에는 이전 생활문화로 볼 수 있는 정책과 결과에 대한 거의 전수조사급의 자료 분석이 포함되어 있다. 반면 정광렬의 연구는 보다 체계적인 정책적 분석과 제안을 제시하고 있어서 전달 체계, 생활문화진흥원 활성화 방안, 제도적 필요성, 인력 및 공간에 대한 정책 틀을 제시하고 있어 이 두 보고서를 함께 볼 경우 기반과 과거, 이후 정책 전개에 대한 당시의 담론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지역 단위 동아리와 자발성에 초점을 맞춘 생활문화에서, 보다 구체적인 접근을 시도한 보고서로는 서울연구원의 백선혜, 라도삼, 조윤정의 『서울시 생활문화예술동아리 활성화 방안』이 있다. 여기에서는 법적 생활문화에 집중한 문체부 보고서와 달리 생활예술을 포괄하는 보다 현실적이고 다소 결이 다른 생활문화에 대한 접근을 보여 주고 있어 현재 지역에서 생활문화, 생활예술의 차이에서 오는 딜레마에 대한 대부분의 고민을 보여 준다.
곧이어서 공간 정책으로서 생활문화센터 관련 연구들이 문체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데 대표적인 자료가 『생활문화센터 조성 지원사업 전략 컨설팅 방안 연구』와 『생활문화시설 인증제도 도입방안 연구』이다. 전자의 경우 생활문화 활동의 거점으로 문체부가 계획하던 ‘생활문화센터’에 집중하여 2014년 이후의 현황 분석과 모니터링 결과, 그리고 전략을 제시하고 있어서 현재도 중심 시설인 ‘생활문화센터’에 대한 고찰이 가능하다. 후자는 생활권, 문화 거점과 지역문화의 관계에 대하여 정치하게 고민하고 있으며 생활 이전의 ‘일상’, ‘일상성’, 그리고 ‘공동체’를 고민하고 있다. 그 외에 『생활문화동호회 활성화 지원사업 결과보고서』는 지역문화진흥원에서 ‘문화가 있는 날 생활문화동호회 활성화 지원사업’의 평가 자료로 매년 발간되고 있어 현재 진행되는 사업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각종 자료들을 살펴보면 생활문화에 대한 정책적 변화를 알 수 있다. 아직까지 생활예술과 동아리 활동, 그리고 지역과 생활문화의 관점에 대한 논의, 알력, 고민, 그리고 정착에 대한 실행은 현재진행형으로 완성되지 못한 상황이다.
가장 최근의 중요한 자료로는 『로컬 지향의 지역문화운동』을 들 수 있는데, 3부 ‘생활문화, 지방문화원은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가, 해야 하는가’에서 가장 최근의 생활문화 논의를 엿볼 수 있다. 이동준은 <너, 아무데서나, 실체도 없는 생활문화 아니니?>에서 “생활문화는 추상적인 범용형 문화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체를 가진 현장형 문화를 말한다. 그 지역 주민의 일상적인 생활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문화를 말하는 것이다.”라고 정확하게 단언하고 있다. 현장형 문화로서 생활문화와 공동체의 생활예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진화 과정에서 예술 창작인 및 단체가 지역과 공동체와 연계되는 삶의 예술으로서의 가능성이 보이고 있어서 이러한 순간에 지혜롭되 자유롭게 예술이 동행하는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덧붙여 작금의 생활 문화 논의는, 과거 예술이 지역 현장과 지역의 삶에서 출발해 온 문학·시각예술·공연예술의 전통을 다시 생각하고, 되찾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추리소설계에서 생활 탐정은 흔히 ‘안락의자 탐정’이라고 불린다. 바오네스 오르치의 『구석의 노인 사건집』이 대표적인 시리즈인데, 무관심한 듯 항상 노끈을 가지고 놀며 혼자 정보를 수집하는 괴팍한 노인이 주인공 폴리에게 슬쩍 실마리를 제공해 미궁의 사건을 어느새 해결한다. 그 유명한 애거사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 시리즈에 등장하는 제인 마플 할머니 역시 유독 범죄율이 높은 마을에서 활약하는 또 한 명의 ‘안락의자 탐정’이다. 경찰과 탐정을 무색하게 만드는 생활 탐정은 동네와 지역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 추리소설 세계에서 무시 못 할 존재이다. 마치 일상에서 가치를 가지는 생활예술의 미래처럼 말이다.
김규원은 현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콘텐츠산업경제연구센터장으로, 프랑스에서 지리학을 수학하고 축제에 대한 논문을 쓰다가 한국문화정책개발원에 입사하였다. 초기에는 축제 관련 연구를 진행했고, 이후 문화도시, 문화시설 관련 다소 하드한 연구를 지속했다. 또한 전통공연예술, 지역문화에 관해 20여 년간 다양한 연구 경험을 축적하였으나 콕 집어 내놓을 전문 분야라고 내세울 것은 없는 실정이다. 단, 국악 관련 정책 연구는 운이 좋아 여러 번 하였으며 초기에 당인리, 광주아시아문화전당 관련 연구에서 사람과 인생에 대하여 많이 배운 것을 아직도 써먹고 있다.
예술경영 426호_2019.6.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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