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국립순수미술학교 국제심포지엄 읽기

예술가의 (무)책임성과 예술의 가치 사이에서

글 : 김현경_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원

예술은 무엇이고, 예술가란 누구인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예술’을 갑자기 낯설게 만드는 질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예술은 의식주만큼이나 익숙한 것이 되었으며, 예술가들의 ‘창작’과 ‘향유’는 더 이상 특수한 몇몇에게만 국한된 활동이 아니다.
자신의 스튜디오를 ‘공장’이라고 불렀던 앤디 워홀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예술은 생활 영역 전반에서 너무 쉽게 만들어지고 또 사라지면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예술가의 개인적·사회적·정치적 책임 문제는 단순히 예술계 내부에 국한되지 않는다.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스캔들에서부터 기물 파손, 검열의 문제 등의 논란은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보호받아야 할 현 시점에 더욱 중요한 사회문제로 확대된다. 특히 공공영역에 ‘예술’이 개입될 때 이러한 예술적 논란을 일으키는 예술가들은 표적과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쉽다.

프랑스에서는 2016년과 2017년, 예술 현장의 현주소를 살펴보는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문화부와 파리 국립순수미술학교(Beaux-Arts de Paris, 이하 보자르)를 중심으로 개최된 두 차례의 행사는 각각 <예술가의 (무)책임성(L’(IR)RESPONSABILITÉ DE L’ARTISTE)>과 <예술의 가치(LA VALEUR DE L’ART)1)>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2016년 파리에서 일어난 사를리 애브도 사건(Attentat contre Charlie Hebdo) 이후로 프랑스에서는 예술 표현의 자유 보장과 보호의 문제가 촉발되었고, 이를 예술 현장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예술가와 지식인들을 초대해 ‘예술에 대한 책임’ 개념이 담고있는 함의를 살펴보고 담론을 이끌어내고자 한 것이다.

두 행사의 결과 보고서로 개별 주제를 제목으로 한 2권의 단행본이 발간되었다. 현장 스케치는 물론 참석한 예술가, 교수, 비평가, 예술시장 전문가들의 다양한 시각이 담겨진 담론집으로서 심포지엄의 내용을 포괄하고 있는 동시에 매우 섬세한 편집으로 현장의 모습을 충실히 담아냈다. 이는 심포지엄의 단순한 결과로 개별 발표자들의 의견을 ‘일괄화’하지 않겠다는 주최 측의 의도를 보여준다. 또한 ‘담론’을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서 예술계는 물론 당시 프랑스 사회를 관통하고 있었던 ‘표현의 자유와 창작’에 대한 사회의 발전적 논의를 촉발시키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2)

2016년·2017년 심포지움 결과 자료집 2016년·2017년 심포지움 결과 자료집
2016년·2017년 심포지움 결과 자료집

새로운 시대의 예술 혹은 예술가의 책임

예술가의 (무)책임성을 주제로 한 첫 번째 심포지엄 <예술가의 (무)책임성(L’(IR)RESPONSABILITÉ DE L’ARTISTE)>에서는 ‘예술가의 책임(L’(IR)RESPONSABILITÉ)’을 역사적인 진화 과정 혹은 문화적 역동성에서 발생하는 매우 역동적인 개념으로 보았다. 예술가는 자신의 표현을 통해 사회에 대한 ‘저항의 영역’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지만, 이것은 권력에 의해 도구화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예술의 의미가 확대되고 세계적으로 시장 가치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예술의 책임’은 이전 시대와는 다르게 정의될 수 있다. 심포지엄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예술가가 스스로 정의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다양한 논의들이 펼쳐졌다.

주최 측인 보자르의 장마르크 부스타만테(Jean-Marc Bustamante, 이하 장마르크) 교장과 모든 참석자들은 예술시장의 (혹은 자본에 의한) 압력 때문에 예술가 간의 순수한 교류의 장이 사라지고 있다고 보았다. 참여자 중 예술가 올리비에 블랑카르(Olivier Blanckart)는 특히 예술 현장이 학계와의 연결 고리를 잃어감에 따라, 예술계에서 발생하는 논란 또는 스캔들에 대한 반성이 사라지고 있어 이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만화가 조안 스파(Joann Sfar)는 이러한 상호 교류가 사라짐에 따라 ‘모든 것을 다 알아야만 하는(Savoir tout faire)’ 예술가, 필요 이상으로 전능한 예술가를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해야 하는 판촉자로서의 예술가가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에 아녜스 투뤼노에(Agnès Thurnauer)와 장마르크는 효율성과 수익성, 합리성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는 예술가들의 끊임없는 투쟁을 강조하였다.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적 실천에 책임을 지는 것은 자신의 일을 수행하고, 자유롭게 대답하거나, 언제 어떻게 대답할지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또 다른 참여자 게르하르트 메르츠(Gerhard Merz)는) 예술가는 ‘정치적 헌신’과는 별개로 사회의 뒤편에서 시민들이나 개개인의 모습을 해체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 심포지엄이 개최될 당시, 당시 프랑스 문화부는 「창작의 자유, 건축, 그리고 문화유산에 대한 법」(Loi relative à la liberté de la création, à l'architecture et au patrimoine, LCAP)의 의회 인준 과정을 거치고 있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그 시기에 열린 심포지엄은 법안 통과 이슈와 함께 시기적으로 중요한 행사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회에서 예술의 표현에 대한 인식 확장이 필요하다는 다양한 담론을 모은 공론장이었기 때문이다.

2016년 <예술가의 (무)책임성> 심포지엄 포스터(좌)와 발표 중인 조안 스파(Joann Sfar)(우) 출처: 파리 국립순수미술학교 홈페이지 2016년 <예술가의 (무)책임성> 심포지엄 포스터(좌)와 발표 중인 조안 스파(Joann Sfar)(우) 출처: 파리 국립순수미술학교 홈페이지
2016년 <예술가의 (무)책임성> 심포지엄 포스터(좌)와 발표 중인 조안 스파(Joann Sfar)(우)
출처: 파리 국립순수미술학교 홈페이지

예술의 가치, 그리고 확장

2017년 개최된 <예술의 가치(LA VALEUR DE L’ART)> 심포지엄은 2016년 행사에서 던져진 ‘예술가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질문에 답변하고자 준비되었다. 물론 ‘예술의 가치’라는 주제 또한 매우 큰 도전 영역으로, 과거 예술의 미학이나 상징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최근 논의되는 사회경제적 가치 개념까지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었다.
영미권에서는 예술지원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이 주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지만, 프랑스는 1990년대 피에르 부르디외 이후 관련 논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예술지원 개념을 계승한 나탈리 하이니히(Nathalie Heinich) 박사는 ‘가치(Valeur)’ 의 연구 성과 발간 시기에 맞춰 심포지엄의 모더레이터(Moderator)로 참여하였다. 이번 행사는 1985년 문화부 주관으로 주최됐던 ‘예술의 사회학 국제 심포지엄’의 의미와도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예술계를 대표하는 보자르가 개최하고 예술사회학을 대표하는 연구자가 참여했다는 점에서 프랑스 예술계가 갖는 가치의 포용과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자리기도 했다.

본 심포지엄은 예술의 가치를 더 이상 하나의 문맥으로만 이해할 수 없음을 전제로 한다. 세실 베르나르(Cécile Bernard)는 경매 시장에서 미술품이 갖는 경제적 가치는 예술계의 ‘오피니언 리더’인 재력 있는 컬렉터들의 영향에 의해 매겨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현재 미술 시장에서 작가와 재력가(컬렉터)가 갖는 개인적인 교류는 과거 예술가와 귀족 후원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또 주목할 만한 지점은 데냐 리우 (Denys Riout)와 로베르 필루(Robert Filliou)가 언급한 예술 가치의 확장성이다. 이들은 예술이 ‘레디메이드’로서 가장 훌륭할 수 있다는 뒤샹의 논리에서 출발해 예술은 예술 자체가 인생이며 삶이 되는 순간 그 가치가 극대화된다고 했다. 예술의 가치는 문화 정책부터 사회 현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폭넓게 다루어진다. 다만 본 심포지엄에서는 예술의 시장 재화로서의 가치에 좀 더 비중을 두고 논의가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후속 심포지엄의 필요성을 남겨두었다.

2017년 <예술의 가치> 심포지엄 현장 사진(좌)과 발표 중인 세실 베르나르(Cécile Bernard)(우) 출처: 파리 국립순수미술학교 홈페이지 2017년 <예술의 가치> 심포지엄 현장 사진(좌)과 발표 중인 세실 베르나르(Cécile Bernard)(우) 출처: 파리 국립순수미술학교 홈페이지
2017년 <예술의 가치> 심포지엄 현장 사진(좌)과 발표 중인 세실 베르나르(Cécile Bernard)(우)
출처: 파리 국립순수미술학교 홈페이지

예술 현장의 변화의 밑거름으로서 담론의 형성

19세기 ‘예술의 도시’에서 ‘예술이 곧 국가’였던 프랑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보자르와 프랑스 문화부가 2년 간 주최한 국제 심포지엄은 작금의 우리의 예술 현장에 대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블랙리스트 사태로 불거진 ‘예술 현장’에 대한 불신을 단번에 해소할 수 있는 해법을 찾고자 노력하는 지금, 초기보다 흐릿해져 가는 혁신의 추동력이 필요한 이 시점에 ‘예술’을 통해서 지상의 낭만을 찾고자 했던 그들로부터 ‘예술의 사명’에 대하여 조금은 진지하고 다양한 해법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예술에 대한 지원, 예술가의 지위에 대한 확보 등 예술 현장의 진일보를 위해서 그 어느 때보다 담론의 형성이 중요한 이때, 우리가 이 심포지엄과 내용들에 대해서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1) 2017년 4월 26~27일 양일간 개최됨
2) 각 단행본은 Beaux-Arts de Paris(2017) 『ActeⅠ- L’(IR)RESPONSABILITÉ DE L’ARTISTE』, Beaux-Arts de Paris(2018) 『ActeⅡ- LA VALEUR DE L’ART』이며 본고에서는 심포지엄의 주요한 내용을 다루되, 주요 관점을 제시한 발표자들의 의견을 소개함에 있어 심포지엄 참여 발표자와 단행본의 페이지를 수록함

  • 김현경
  • 필자소개

    김현경은 프랑스 리옹 2대학과 파리 4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했고, 프랑스 에꼴 뒤 루브르에서 박물관학을 전공했다. 현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예술정책연구실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weekly 예술경영 예술경영 428호_2019.7.25. 정보라이선스 정보공유라이선스 2.0

덧글 1개

덧글입력

  • pjh
  • 2019-08-09 오후 12:47:41
좋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심도있는 담론의 장이 펼쳐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비뚤어지 미술에 사고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되라라 생각합니다.[Del]

quick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