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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규원_한국문화관광연구원 콘텐츠산업경제연구센터장
조 리프혼(Joe Leaphorn)과 짐 치(Jim Chee)는 오클라호마의 나바호(Navajo) 부족 경찰이다. 사건의 시작은 사라진 전설의 나바호 양탄자에서 비롯된다. 나바호의 전설 속 악마인 변신술사(Shape Shifter)로 취급받는 백인 악당의 등장과 함께 소설은 갑자기 베트남 전쟁, CIA, FBI 등이 마구 뒤엉키는 풍경을 연출한다. 미국 서남부의 건조한 사막 먼지 속에서 이들은 나바호 문화와 전설에서처럼 나뒹군다. 죠수아 트리와 도마뱀들이 실루엣을 그리는 사막에서 사라지고 죽어가는 증인과 친구들, 복수와 응징 속에서 리프혼은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나간다. 『셰이프 시프터(The Shape Shifter)』는 나바호의 문화가 바탕색처럼 드리워진 독특한 작품이다.
소설의 저자 토니 힐러먼(Tony Hilerman, 1925-2008)은 백인이지만 어려서부터 포타와토미족 마을에서 거주하며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성장하였다. 이후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부상을 입고 돌아와 나바호족의 치유의식을 경험하기도 한 인물이다. 미국 남서부 지역을 주 배경으로 다루는 작가로, 이 외에도 『고스트웨이』, 『코요테는 기다린다』, 『축복의 길』, 『스카이워커』 등 원주민 문화를 반영한 작품들로 알려져 있다. 셰이프 시프터는 ‘미 서남부의 셜록홈즈’라 불리는 부족 경찰 리프혼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번 글에서 다룰 ‘문화영향평가’는 해외에서 먼저 시작된 것으로, 1990년대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와 미국 하와이에서 ‘원주민 공동체 보호 및 유산 보전’을 목적으로 지역 개발이 미치는 문화적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반면 한국의 문화영향평가는 그보다 포괄적인 ‘문화적 가치의 사회적 확산’을 목적으로 한다. 1990년대 말 처음 논의가 되었다가 참여정부 시절 문화기본법과 문화영향평가를 연계해 추진하는 계획을 발표하였으나 연구에서 그친 바 있다.
현재의 문화영향평가는 2013년 제정된 문화기본법 제5조 4항에 의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14년~2015년 시범평가를 거쳐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정책 면에서 각종 정당이나 출마자의 선거 공약에서도 문화영향평가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었다. 또한 서울시 2017년 문화도시기본조례, 경기도 2018년 문화영향평가조례에서도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문화영향평가의 도입이 제도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워낙 복잡한 개념인 ‘문화’에 대해 다루다 보니 초기부터 다양한 의견과 논의를 거쳐 매년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혁신과 개발이 더해지고 있다. 평가 자체는 매해 변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과정에서도 문화영향평가의 목적인 ‘문화적 가치 확산’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정책적으로 ‘가치 확산’, ‘교육과 점검’을 넘어 ‘실효성’ 혹은 ‘강제적 환류성’을 확보하는 것은 여전한 과제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문화비전 2030, 사람이 있는 문화’란 기조에서 문화영향평가의 확대 및 실효성 강화를 세부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제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를 실현할지 해결해야 할 시점이다.
현재의 문화영향평가를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자료는 ‘2018년 문화영향평가 종합결과보고서’이다. 보고서는 제1장 문화영향평가 개요, 제2장 2018년 문화영향평가 현황 및 성과, 그리고 본문 ‘문화영향평가 대상별 평가결과’에서 제1장 전문평가; 기본평가 21건, 제2장 전문평가; 심층평가 3건, 제3장 전문평가; 전략평가 1건, 제4장 약식평가 10건의 결과 순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설문지 표준양식과 약식평가서 표준양식을 부록으로 제시하고 있다.
2018년 문화영향평가의 특징 및 방향은 1. 사람으로서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문화권의 신장 지향, 2. 규범적 가치로서 문화 가치의 공유와 확산 지향, 3. 평가와 연계하여 정책 대안 모색을 위한 문화컨설팅 지원으로 요약된다. 컨설팅 지원은 환류를 위한 강제성과 확산 제고 사이에서 여전히 후자가 중심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평가가 본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컨설팅이 과도기적 과제에 국한되었으면 한다.
이어서, 기본 방향의 1, 2는 평가지표의 평가 영역에서 ‘문화기본권’, ‘문화정체성’, ‘문화발전’으로 구분되어 있다. 물론 이 3가지 영역도 매우 넓은 개념이지만 조금 더 나아가면 평가지표에서 1. 문화기본권: 문화향유에 미치는 영향, 표현 및 참여에 미치는 영향, 2. 문화정체성: 문화유신 및 문화경관에 미치는 영향,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 3. 문화발전: 문화다양성에 미치는 영향, 창조성에 미치는 영향으로 구분되고 있다. 이 구분은 2014년과 거의 같다. 단, 보고서에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블랙리스트 이후 문화기본권 영역에서 ‘표현 및 참여에 미치는 영향’에 표현의 자유의 가치에 대한 영역이 보강되고 있으며, 다양성 및 창조성에 미치는 영향에서 다원예술 및 창작 기반에 대한 영역이 중시되는 가능성이 사실상 확보된 변화가 있다. 아쉬운 점은 ‘표현의 자유’, ‘창작 기반 확보’ 등과 같이 보다 구체적인 용어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 대부분 결과 보고서에서는 ‘주민의 표현 및 참여’, ‘사회적 약자의 예술적 영역 및 문화적 가치’ 등으로 설명되어 명확하지 않고 나아가 ‘창조성’도 ‘창조자본과 창조기반’이라는 더 어려운 개념으로 설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문화영향평가 시행 대상의 변화를 살펴보면, 평가 대상에 대한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문화 외의 정책 영역에서 문화적 가치를 제고한다는 점에서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 중소기업청, 2018년 도시재생뉴딜사업 등이 포함되어 타 부처 사업에 문화적 가치 확산의 기반을 마련한 점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2018년에는 전략사업으로 ‘원주천 댐 건설사업’ 등 환경 관련 사업에도 문화영향평가가 진행되었다. 이는 사업 추진 초기에 구상한 대상에 점차 다가서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문화사업 자체의 문화영향평가 진행 여부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문화’를 협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문화 사업에서 ‘문화적 가치’를 제고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원론적으로는 불필요하지만, 2017년 문화 중에서도 협의인 시각예술 중심의 ‘광주 비엔날레’ 평가에서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장르에 국한된 문화적 가치를 넘어 지역사회 혹은 국가적 차원의 광의의 문화적 가치가 해당 예술 사업에서 의미 있는지를 다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가치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문화가 중심이 되는 사업’을 평가할 때는 전체 영향평가를 수행할 수 있는 가용 재원, 인력, 정책적 자원의 한계와 효과를 보다 세밀하게 볼 필요는 있다.
마지막으로 문화영향평가의 ‘유형’에 대한 부분이 중요하게 설명되는데, 이 부분은 2018년과 2019년에서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이기도 하다. 유형은 크게 전문평가와 약식평가로 구분된다. 전문평가는 간단히 말해, 별도 전문기관 수행을 통해 외부 시각에서 사업을 평가하는 것으로 기본평가, 심층평가, 전략평가로 구분된다. 그리고 약식평가는 문화영향평가의 가치를 제고하는 차원에서 사업을 수행하는 공공기관에서 ‘자체’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2017년 광주비엔날레 시범평가에서 2018년에는 도시재생 뉴딜사업 중 중소규모 10개 사업1)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다.
이 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노력을 많이 기울인 유형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2018년 자체적으로 시행한 ‘전략평가’ 유형이다. 대상은 앞서 언급한 ‘원주천 댐 건설사업’이었다. 심층평가, 전략평가는 설문조사 등 양적 자료가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초기에 기본/심층 혹은 사전과 사후에 국한했던 유형은 현재 한결 세분화되고 시기도 사전-과정-사후 평가로 구분되는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다양한 사업의 형태와 효과에 맞춰 유형을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2018년 「문화영향평가 유형별 가이드라인 개발 연구」가 진행되었다. 본 연구는 문화영향평가와 타 분야의 영향평가사업과의 분석, 그리고 예비타당성조사 및 지방재정투자사업 조사, 공립 박물관 건립 지원 사업 사전 평가 등 문화 요소를 반영했거나 문화가 대상이 되는 유관 평가 제도와 비교·분석한 결과를 담았다. 그리고 국내외 문화영향평가에서도 문체부, 지자체 영향평가, 국외 문화영향평가를 비교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재 분류된 유형 즉 전문평가, 약식평가 그리고 대상으로서 도시재생사업 평가 등의 고려 사항 및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나아가 향후 문화영향평가의 유형의 변화의 필요성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동시에 해외 문화영향평가의 변화를 살펴보는 「문화영향평가 관련 국외 동향 및 사례 연구」도 2018년 발표되었다. 나아가 ‘문화영향평가 대상선정 및 평가유형화 기준연구’가 현재 진행되고 있어 문화비전 2030에서의 실효성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이 구상되고 있다.
방대한 문화영향평가 사업의 현재 모습을 자료를 통해 매우 간략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세부적인 유형, 분야, 선정, 가이드라인 그리고 가장 어려운 지표들에 앞서 넘어가야 할 높은 준령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문화’와 ‘예술’의 산이다. 아직 ‘문화기본법’, ‘문화예술기본법’, ‘문화산업진흥기본법’에서도 문화와 예술의 의미를 뚜렷이 정의하거나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시점인지라, 문화영향평가에서 이를 구체화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문체부, 지자체, 공공기관에서도 이러한 구분이 어렵고 나아가 ‘문화적 가치’의 효과에 대한 실효적인 증명도 어려운 시점이다. 어쩌면 증명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양한 도시재생사업, 타 부처 사업 등에서 예술가 혹은 예술 활동의 가치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인정받고 대우받는 지표가 향후 보강이 된다면, 문화기본권에서 예술의 역할과 중요성이 빛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결론적으로 문화영향평가는 추상적인 개념의 ‘문화’를 구체적인 제도의 도구로 제시하고 사용하는, 현재로서는 가장 강력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문화예술이 개념적·철학적 가치를 오롯이 유지하면서도 행정 제도화와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지가 과제로 남아 있다. 나아가 본 목적인 ‘문화적 가치’를 보다 적극적으로 다른 분야에 심어 놓을 수 있을지 역시, 서로 다른 큰 산을 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역시 이러한 과제에서는 타 문화정책 영역과 마찬가지로 감성 혹은 영감, 그리고 합리와 논리가 함께 ‘스카이 워커’처럼 날아가는 것을 기대하게 된다.
1) 2018년 국토교통부 선정 도시재생 뉴딜 사업 중 주거지지원형 10개 사업 대상
김규원은 현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콘텐츠산업경제연구센터장으로, 프랑스에서 지리학을 수학하고 축제에 대한 논문을 쓰다가 한국문화정책개발원에 입사하였다. 초기에는 축제 관련 연구를 진행했고, 이후 문화도시, 문화시설 관련 다소 하드한 연구를 지속했다. 또한 전통공연예술, 지역문화에 관해 20여 년간 다양한 연구 경험을 축적하였으나 콕 집어 내놓을 전문 분야라고 내세울 것은 없는 실정이다. 단, 국악 관련 정책 연구는 운이 좋아 여러 번 하였으며 초기에 당인리, 광주아시아문화전당 관련 연구에서 사람과 인생에 대하여 많이 배운 것을 아직도 써먹고 있다.
예술경영 434호_2019.1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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