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가치와 영향연구: 국내외 담론과 주요 연구결과 분석」읽기
글 : 김규원_한국문화관광연구원 콘텐츠산업경제연구센터장
SF소설이 일탈된 환경에서 일상을 찾아 나선다면 추리소설은 일상적인 환경에서의 일탈을 추적한다. 그러다 보니 ‘추리소설은’은 엄청난 논리와 상상력 없이는 독자의 공감을 얻기 어렵고, 막 나가는 작품이 되기 쉽다. 추리소설은 평온한 일상을 흔드는 ‘범죄 사건’이 일탈 요소이자 중심 소재가 된다. 그러나 긴장과 흥분을 고조시키기 위해서는 범죄를 둘러싼 무언가가 추가로 필요하다. 여기서 가끔 등장하는 것이 ‘예술’이다. 반복되는 일상과 크게 대비되는 예술의 ‘다른 속성’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납득할 만한 일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은 국내 소설인 『가상범인』으로, 한국 추리문학의 시조이자 전설인 김내성의 첫 작품이다. 이 소설은 작가가 1936년 일본 유학시절 썼던 습작을 개작한 것으로, 한국 최초의 현대 추리소설이자 최초의 명탐정 캐릭터 유불란 탐정이 등장한다. 소설의 첫 장면은 마치 에밀졸라(Émile Zola)의 『나나(Nana)』와 같이 극장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독특한 구성뿐만 아니라 전개 방식은 더 괴이하다.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탐정 유불란은 극본의 원작자이자 배우로 극에 참여하고, 실제 공연이 진행됨에 따라 진실에 다가서게 된다. 소설에는 “그러나 너는 너무도 충실한 예술가였다. 연극을 하고 있는 동안 너는 너 자신도 저항할 수 없는 예술적 박진성을 전신에 느꼈던 것이다.”와 같은 독자를 흥분시키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이 국내 최초의 추리소설은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일상 속에서의 일탈을 보여주기 위해 ‘예술’을 끌어들인 것이었던 것이다.
예술이란 무엇이고, 삶과 사회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개인적인 의견은 자유지만, 정책 분야에서 논리적으로 예술이 무엇이냐를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삶과 사회에서 ‘예술의 가치’가 무엇이고 이 가치에 따라 ‘예술의 영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문화예술 정책 영역에서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연구이다. 예술의 가치를 정의하고 이것을 정책에 녹여내기 위해서는, 모든 학술연구가 그러하듯이 기존 연구사(硏究史)를 조사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부터 간단하지 않다.
올해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진행된 「예술의 가치와 영향연구: 국내외 담론과 주요 연구결과 분석」 논문의 분량부터가 간단치 않음을 말해준다. 크로마뇽인의 동굴에서 출발한 예술의 개념부터, 현대 예술의 가치와 영향에 대한 연구들까지, 정책과 연관된 논의들을 추리고 분석해 장장 400여 쪽에 달하는 결과를 도출했다. 참고문헌 목록만 해도 22쪽이 넘는다.
본 연구의 제2장에서는 ‘예술의 가치와 영향에 대한 개념과 이론’이란 주제를 다루고 있다. 1절에서 예술의 가치에 대한 철학적·역사적 논의, 2절에서 예술의 가치에 대한 (현대의) 이론적 논의, 3절에서 예술에 대한 공공지원의 정당성 논쟁을 다루고, 마지막 4절에서는 예술의 영향 규명을 위한 방법론을 소개·검토하였다. 각 절에서는 예술에 대한 기존 선행 연구 논의를 하나하나 분석하고 나누고 있다. 좀 더 설명하자면, 1절에서는 고대 희랍부터 20세기까지의 예술을 바라보는 논점들을 간략하게 논의하였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넘고 홉스와 로크로, 마르크스를 거쳐 벤자민과 아도르노, 들뢰즈까지 결코 비켜 갈 수 없으면서도 책 몇 권에 걸쳐 이야기해도 모자란 분량을 15쪽 분량으로 요약했다.
나아가 2절에서는 문화경제학의 시조로 볼 수 있는 스로스비(David Throsby), 클래머(Arjo Klamer), 그리고 랜드(RAND)연구소에서 현재에도 많이 논의되는 본질적·도구적 편익 분석연구, 신도구주의 등의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로스비의 경우 6가지 문화적 가치 요소 중 예술의 가치, 그리고 문화산업 이론가들이 항상 이야기하는 ‘창조예술’이 핵심인 ‘예술과 문화산업의 동심원 모델’을 설명하였다.
‘공공지원의 정당성’ 논쟁을 다룬 3절에는 보몰(Baumol)과 보웬(Bowen)의 ‘비용질병 이론’과 함께 예술 지원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논의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마지막 4절에는 예술의 영향을 측정·추정하기 위해 개발했던 방법론을 개괄하고 있다. 즉 제2장은 과거부터 현대까지 예술의 가치와 영향에 대한 다양한 이론과 방법론을 설명하고 있다. 다만 여러 이론들 중 왜곡 또는 이미 퇴색한 문제들과 아직 의미를 갖는 논의들을 개인차가 있겠지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콘텐츠 산업의 기초로 핵심 창조예술을 언급하는 스로스비의 논의에도 불구하고 문화산업과 예술이 별도로 진행되는 국내 환경에 대한 비판과 동정(?)도 따를 수 있다.
제3장에서는 ‘예술의 가치에 대한 담론 전개와 맥락 분석’을 다루고 있다. 눈치 챘겠지만 제2장의 이론적 논의나 공공지원의 정당성 논쟁은 사실상 순수한 상아탑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는 각 국가 혹은 세계적인 정치에서 불거진 정책의 변화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제3장은 영국, 미국, 프랑스 그리고 국내 정책의 변화와 각 시기별 담론 전개를 엮어 설명해 놓았다. 이러한 전개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예술의 사회적 가치 증명, 지원의 정당성 그리고 지금도 우리에게 끊임없는 관심과 논의를 요하는 ‘도구적, 그리고 본질적 가치’에 대한 논쟁이다. 예를 들어 21세기 초 영국의 ‘도구주의 vs 도구주의에 대한 비판’ 부분에서는 ‘창조산업 1998년 계획안’ 혹은 2001년 계획안 등이 전개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신노동당 집권 이후 국내에서 자주 인용된 앞의 계획안뿐만 아니라 자주 소개되지 않았던 예술의 도구화에 대한 반론과 그 움직임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대표적으로 영국 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가 주도한 2006년 ‘아트 디베이트(Arts Debate)’를 들 수 있다. 여기서는 ‘예술의 가치는 무엇인가’, ‘예술에 대한 공공지원의 원칙은 어떠해야 하는가’ 등의 주제에 대해 전국에 걸쳐 다양한 그룹들이 활발한 논의를 펼쳤다. 예를 들어 ‘왜 예술이 중요한가’에 대해 ‘예술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역량’, ‘예술은 삶의 경험을 풍요롭게 함’, ‘예술은 예술 외적으로도 다양한 맥락에 적용되었을 때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짐.‘ 등의 설명을 공유한 것은 토론이 가져온 하나의 성과였다. 본 연구 말미에서는 이러한 논의에 대한 국내 사업 적용을 제안하고 있다.
한편 프랑스에 대해서는 문화민주주의, 문화민주화에 대한 역사적인 논의와 예술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담론들의 전개 과정과 맥락을 분석하면서, 정부 문화예술정책의 변천 과정을 예술의 가치에 대한 논의와 연계해 보여주었다. 그 밖에 ‘예술의 가치에 대한 민간 및 학계의 담론 변화’ 영역에서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전신인 문화발전소, 문화정책개발원 및 ‘문화정책논총’의 전개를 소개하고 있다. 시기별로는 1980년대 이후는 문화와 예술의 구분이 다소 모호한 연구들이 다수 있었고, 그러다 2000년대 이르러 예술의 본질적 가치가 논의되었으며, 2010년대 무렵에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영향 연구와 경제적 가치 연구, 공공적 가치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소결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관계를 규명하는 실증연구 수에 비하여 탐색적 분야로서 예술의 가치와 영향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적은 상황’1)이라고 제기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 가장 어려운 영역이자 핵심인 주제는 제4장, ‘예술의 영향에 대한 국내외 주요 연구결과 분석’에 있다. 여기서는 지금까지의 다양한 논의들을 준거 틀로 묶고 분석하고 있다. 예술의 가치에 대해서는 ‘본질적 영향과 도구적 영향의 구분’, ‘개인 또는 사회·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으로 구분하는 프레임워크로 설명하였고, 이에 대한 세부적인 대표를 예시하였다. 반면 예술의 영향에 대해서는 각각 개인, 공동체·사회, 국가·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으로 구분해 분석하였다. 더불어 해외 주요 국가의 영향 연구 분석에서는 변수에 따라, 혹은 주제별·측정 방법별로 요약하여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개인 부분에서 개인적 영향의 단계, 경험의 영향 등은 각각에서 논의하는 내용과 이론들이 매우 흥미롭게 전개된다. 사회/공동체, 혹은 국가/지역경제 영향 등은 우리가 익히 들어온 내용들이지만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게 된 연구명, 방법론, 실재 결과 등 당시 연구 결과에서 제시된 수치, 통계, 논의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더불어 본문에서 이러한 결과들에 대해 ‘예술은 개인적 차원에서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촉진시키고, 타인에 대한 존중과 공감을 제고하며, 인간의 경험과 문화의 다양성을 깨닫게 하여 성찰적 개인을 형성한다.2)’ 등 예술의 가치에 대한 제기된 논의를 요약하면서도 ‘때로는 학자나 전문가들이 상정했던 예술의 가치(value)와 연구를 통해 실증적으로 규명된 영향(impact)의 증거 간에 차이, 즉 예술의 가치와 영향 간의 갭이 발생하는 경우’를 언급하고 나아가 ‘예술의 가치는 본질적으로 무형적이고 비가시적이므로 이를 계량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 또한 ‘예술이 지닌 가치를 경제적 가격으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그 가치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및 ‘예술의 가치는 통상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통해 사회 및 경제적으로도 확산되는데, 예술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맥락 의존적 특성을 가진다.3)’ 등으로 이러한 연구들에 대한 비판의 논의들도 동시에 소개하고 있다. 어찌 보면, 병 주고 약 주는 듯하지만, 바로 이것이 이제부터라도 논의를 다잡아야 할 근거라고 할 수도 있다.
본 연구는 기존의 방대한 양의 연구들을 소개, 분석, 요약해냈다는 강점을 가진다. 한편으로는 최대한 가치판단을 지양함으로서 국내외 연구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를 독자의 몫으로 남겼다. 끝으로 연구는 앞으로 우리가 예술의 가치와 영향을 논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는 예술의 가치를 일상에 램프의 요정처럼 불러올 수 있는 마지막 주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램프를 만나기 위해서는 우선 이 방대한 연구를 이제부터 하나하나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 갈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정책에서 반드시 넘어야 하는 산이 아닐까 생각된다.
1) 양혜원 외, 「예술의 가치와 영향 연구: 국내외 담론과 주요 연구결과 분석」,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9, 180 쪽
2) 위 논문 295쪽.
2) 위 논문 296-297쪽.
김규원은 현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콘텐츠산업경제연구센터장으로, 프랑스에서 지리학을 수학하고 축제에 대한 논문을 쓰다가 한국문화정책개발원에 입사하였다. 초기에는 축제 관련 연구를 진행했고, 이후 문화도시, 문화시설 관련 다소 하드한 연구를 지속했다. 또한 전통공연예술, 지역문화에 관해 20여 년간 다양한 연구 경험을 축적하였으나 콕 집어 내놓을 전문 분야라고 내세울 것은 없는 실정이다. 단, 국악 관련 정책 연구는 운이 좋아 여러 번 하였으며 초기에 당인리, 광주아시아문화전당 관련 연구에서 사람과 인생에 대하여 많이 배운 것을 아직도 써먹고 있다.
예술경영 436호_2019.1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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