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예술분야 정책 및 법 살펴보기

예술인을 지키지 못하는 정책의 의미를 묻는다

글 : 김규원_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연구본부장

1965년 사망한 일본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미친 노인의 일기』 초반부에 이런 글이 있다. “나는 저 아케마키(가부키 예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통증을 잊는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 몸의 통증을 경감시킬 정도로 전통예술, 나아가 예술인의 가치는 측정되기 어려울 만큼 높은 것이다.

예술경영은 ‘예술가의 사회에서의 가치를 존중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창작이든 실연이든 예술가의 존재에서 시작되는 것이 예술경영, 아니 예술 그 자체이다. 예술정책과 예술경영에서 변함없는 상수(常數)는 ‘예술가의 존재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지난 자료읽기에서 언급한 ‘예술의 가치’의 가장 기본적인 테제이다. 예술가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 명예, 자존심 그리고 삶에 대한 사회의 인정과 존중에서 예술이 시작되고 가치가 창출된다. 오늘 자료읽기는 이 중 국악 예술과 국악 예술인에 대한 생각에서 시작된다.

최근 국악 분야에서 다양한 계획과 법 제정이 이루어지거나 혹은 제기되고 있다.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와 관련하여 얼마 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국악문화산업진흥법’이라는 다소 엉뚱한 명칭을 가진 법안의 움직임이 있었다. 다행히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등에서 명칭, 개념 등의 수정 의견을 내어 변경될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이는 과거 '전통문화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안'을 제안한 2006년 ‘전통예술 활성화 방안 비전 2010’ 이후 최초로 종합적인 국악 정책 변화의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지난 11월에는 ‘국악문화산업진흥법’ 제정을 촉구하는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국악단체 대표자들이 “한류문화의 다양한 콘텐츠는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지만 우리 고유의 소리인 국악은 소외되고 홀대받고 있다” 주장하며 법 제정을 위한 대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기로 한 일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2017년 9월 발의된 이 법안은 ‘국악문화산업의 지원 및 육성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여 국악문화산업 발전의 기반을 조성하고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국악문화산업실태조사 실시’, ‘국악문화산업진흥위원회의 설치’, ‘전문인력 양성 사업 지원’, ‘국악문화 분야 방송 확대 노력’, ‘국악문화산업진흥원 설치’, ‘국악방송법인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외에 ‘국제교류 및 해외시장 진출지원’, ‘국악의 생활화 지원’ 등을 포함하고 있다. 한편 제3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에서 “국가는 우리나라 국악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국악문화산업의 발전과 확산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하여 필요한 정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라고 국악에 관한 정부의 역할을 최초로 명시하고 있다.
물론 올해 국악 관련 법안은 여러 번 발의되었다 폐기되어 다시 제정될지는 미지수이나, 이전과는 달리 국회와 문체부, 국악계가 적극적으로 함께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본 법안은 명칭과 개념을 수정할 필요가 있고, 산업 영역을 과도하게 제시한 면이 있으며, 타 법 혹은 타 분야와의 관계성 등이 문제점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현재는 긍정적인 의견들이 다수이다. 이 중 법안의 제5조 ‘국악문화산업 기본계획의 수립 등’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의 포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1. 국악문화산업의 진흥을 위한 중·장기 기본 방향
2. 국악문화산업 활성화를 위한 기반 조성에 관한 사항
3. 국악문화산업 전문 인력 양성에 관한 사항
4. 국악의 교육과 보급 지원에 관한 사항
5. 국악 경연대회 지원에 관한 사항
6. 국악의 창작활동 지원과 타 분야와의 융합활동 지원에 관한 사항
7. 국악문화산업의 교육콘텐츠 개발 지원에 관한 사항
8. 국악문화산업의 해외 진출 및 국제교류에 관한 사항
*출처: 국악문화산업진흥법


법안이 제정되면 향후 중장기적인 종합 국악 정책 수립의 기틀이 마련된다. 법안에 보이지는 않지만 법안 제정과 이에 따른 향후 정책 수행 과정 중에 ‘국악인’에 대한 가치의 존중이 동반될 것으로 감히 전망한다.

한편, 문화재정책 분야에서는 ‘문화재보호법’과 별도로 2015년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약칭: 무형문화재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문화재보호법상 명시되었던 무형문화재, 보유자, 보유단체, 이수자, 전승자, 전수교육조교, 명예보유자 등의 정의, 원칙 등이 ‘무형문화재’에 국한하여 제시된다. 제1조에는 본 법의 목적 ‘이 법은 무형문화재의 보전과 진흥을 통하여 전통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향상을 도모하고 인류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가, 제3조에는 기본원칙 ‘무형문화재의 보전 및 진흥은 전형 유지를 기본원칙으로 한다’가 명시되어 있다.
본법에서는 무형문화재위원회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역시 기본계획 수립을 명시하고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무형문화재의 보전 및 진흥에 관한 기본 방향
2. 무형문화재의 보전 및 진흥을 위한 재원 확보 및 배분에 관한 사항
3. 무형문화재의 교육, 전승 및 전문 인력 육성에 관한 사항
4. 무형문화재의 조사, 기록 및 정보화에 관한 사항
5. 무형문화재의 국제화에 관한 사항


참고로 문화재청은 2020년 사상 최초로 예산 1조 원을 돌파하였다. 특히 5대 중점 투자 분야 중 ‘무형문화재 보호 투자’ 영역을 두 번째로 편성하고 있다. 이 내용에 따르면 무형문화재 기·예능 보유자가 안정적으로 전승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월정 전수교육 지원금을 증액하고, 전수교육관을 건립하거나 보수를 증액하며, 교육관에 문화예술교육사를 배치하는 데 총 495억 원(93억 원 증액)을 편성하였다.

2020년 문화재청 예산 및 기금 현황 출처: 국회예산정책처 2020년 문화재청 예산 및 기금 현황
출처: 국회예산정책처

예산 확정 이전 문화재청은 올해 6월 문화재청 개청 20년을 맞아 문화유산 미래 정책비전 선포식을 갖고 6대 핵심전략을 발표했다. 비전은 ‘미래 가치를 만들어 가는 우리 유산’으로 삼고, 이를 위해 ▲중앙정부 주도에서 ⇒ 지역‧민간의 자발적인 참여, ▲수도권‧대도시 중심에서 ⇒ 소도시 활성화와 지역 간 균형, ▲점 단위 개별문화재 중심에서 ⇒ 점, 선, 면, 역사인문 공간 보존, ▲지정 문화재 위주 보호에서 ⇒ 비지정 문화재도 포함하는 포괄적 보호, ▲원형 유지, 규제 중심에서 ⇒ 가치 보존‧창출, 진흥·조장으로 정책 방향에 변화를 주었다.

문화유산 미래 정책비전 6대 핵심전략 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 미래 정책비전 6대 핵심전략
출처: 문화재청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과거 문화재의 보존·보호에 그쳤던 문화재청이 공간, 사람, 역사 문화 환경과 맥락을 연계하여 포괄적·입체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거버넌스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공감, 소통, 서비스 등의 용어를 사용해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접근성을 확대하려 하고 있으며, 수식적이고 다소 관료적인 발상이긴 하나 ‘1기초단체 1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건립’과 같은 사업까지도 제시하고 있다.

이렇듯 문화부 및 문화재청의 법안, 계획 등에서 국가 차원에서 ‘국악’ 혹은 국악 연관 분야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며 이러한 계획들이 실재 진행되고 법안제정이 이루어진다면 정책의 기본 틀은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책의 그림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불편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정책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 도입의 세세한 부분까지 고려한 사업 계획, 그리고 혹 과도한 정책 도구를 통해 로봇처럼 관료식으로 진행되는 정책 과정 들에서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 나아가 이들 정책의 가장 중요한 근간이 되는 국악인, 넓은 범위로는 예술인에 대해 국가와 사회의 존중과 대우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십수 년 전 부산 기장에서 처음 접하고 감동을 받았던 최고의 기량과 인품을 갖춘 국가의 보배이신 분의 너무나도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국가의 예술 정책과 법과 계획이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허망함도 함께했다. 강사법 이전에(나는 강사법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는 의견이다.) 국가가 존중하고 보호해야 하는 예술인을 지키지 못한 것은 문화예술 정책을 하는 공무원을 포함한 모든 이의 책임이다. 다시금 ‘예술인의 사회에서의 무한한 가치에 대한 존중’을 불변하는 상수(常數)로 두는 예술경영과 예술정책의 필요성을 되새기게 된다. 4차 산업 혁명 관련 화두가 난무하는 미래에도, 이 사회에 가장 주요한 기반이 되는 건 기계가 대체하지 못하는 ‘예술인’임을 한 해의 끝에 다시 한번 주장하며, 그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새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참고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령’에는 “예술영재교육과 체계적인 예술실기교육을 통한 전문예술인의 양성을 위하여 (중략)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둔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체계적’이란 무엇인가?

  • 김규원
  • 필자소개

    김규원은 현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연구본부장으로, 프랑스에서 지리학을 수학하고 축제에 대한 논문을 쓰다가 한국문화정책개발원에 입사하였다. 초기에는 축제 관련 연구를 진행했고, 이후 문화도시, 문화시설 관련 다소 하드한 연구를 지속했다. 또한 전통공연예술, 지역문화에 관해 20여 년간 다양한 연구 경험을 축적하였으나 콕 집어 내놓을 전문 분야라고 내세울 것은 없는 실정이다. 단, 국악 관련 정책 연구는 운이 좋아 여러 번 하였으며 초기에 당인리, 광주아시아문화전당 관련 연구에서 사람과 인생에 대하여 많이 배운 것을 아직도 써먹고 있다.

weekly 예술경영 예술경영 438호_2019.12.26. 정보라이선스 정보공유라이선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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