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예술조직을 위한 실무지침서
글: 연수현_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원
코로나19 팬데믹 속 문화예술 현장에서는 시설, 기관, 관객, 종사자와 관계된 수많은 가이드라인, 지침과 마주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방역 지침, 준비 및 대응 지침, 관리 지침, 운영 및 관리 가이드라인 등 중앙정부 및 지자체, 관련 협회, 자체 기관 등에서 발표한 지침과 그것들의 세부지침들까지 그 수와 종류가 정말 많다. 게다가 어제와 오늘의 지침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에 맞추어 수정되고 변경되고 있으며, 그마저도 지침의 해석이 달라져 혼선이 가중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지침 때문에 지친다’는 현장의 이야기는 문화예술계 관련 종사자 ‘코로나 번아웃’ 현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 대응 지침 준수는 사회 구성원의 의무이자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고자 하는 모두의 의지일 것이다. 지침을 준수하면서도 그 안에서 끊임없는 논의를 통해 문화예술계 생태계를 사수하려는 노력이 있기에 현장에서의 어려움이 따른다.
한국 말고도 다른 나라들도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극복 차원의 문화예술 분야 지침, 수칙, 가이드라인을 다양하게 수립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연방·주 정부, 예술위원회, 협회, 노동조합 등에서 만든 여러 형태의 지침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해서는 안 되는 일, 해야 하는 일, 혹은 해도 되는 일들이 빼곡하게 가득 적힌 다양한 자료들 중 한 보고서에 시선이 멈췄다. 지난 1월 NEA(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에서 발간한 보고서였다. 코로나 상황에서 관객을 시각 및 공연예술 공간으로 안전하게 다시 데려올 수 있도록 하는 실무지침서와 같은 가이드 『The Art of Reopening: A Guide to Current Practices Among Arts Organizations During COVID-19』이다. 이 보고서는 2020년에 운영을 성공적으로 재개한 예술조직의 심층 사례를 바탕으로 재개장을 앞둔 여러 예술조직들이 직면하게 될 어려움을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돕고자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성공적으로 운영을 재개한 9개 예술기관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6개의 공통점을 핵심 교훈으로 제시하고 있다. 폭넓은 사례 수집을 위해 예술 영역, 예술 규모, 지리적 위치 등 의도적으로 다양한 기관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인터뷰한 극장 단체로는 아메리칸 셰익스피어 센터, 갈라 히스패닉 극장, 버크셔 극장 그룹이 있다.
이 보고서는 성공적으로 문을 다시 열 수 있었던 예술기관의 6가지 공통적인 교훈을 찾아내어 제시하고 있으며, 인터뷰 참여 기관의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많은 예술조직이 직면하고 있거나 직면하게 될 어려움들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첫째, "당신의 가까운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강화하세요."
가상 혹은 비대면 등 실내외 프로그래밍 기회를 혼합 제공하는 것을 포함하여 예술기관이 지역 사회의 요구에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네브래스카주 링컨에 있는 ‘Lied Center for Performing Arts’는 도시 전역의 이웃들에게 이동식 음악 무대를 선사했으며, 뉴욕주 사라낙 레이크의 ‘Adirondack Center for Writing’은 물에 젖었을 때만 볼 수 있는 페인트를 사용하여 마을 전역에 시를 쓰고 비 오는 날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둘째, "지역사회의 의료 전문가 혹은 의료센터와 제휴하여 전문성을 확보하세요."
많은 기관이 취한 한 가지 조치 중 하나가 공공 보건 전문가 또는 팀과 함께 운영 전략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었다. 의료 전문지식에 대한 접근은 예술단체가 시, 카운티, 주 및 연방 기관의 지침을 선별하고 시설과 프로그램에 적합한 프로토콜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지역병원과 직접 협력하거나 단체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단체 이사진, 장기 충성 고객을 통해 상시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의료 전문가를 확보하였다.
셋째, “고립? 오히려 업그레이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고립이 심각해 보일 수 있고 유지에 광범위한 노력이 필요할 수 있지만, 또한 예술가에게 더 큰 자신감을 제공하고 서로 간의 결속력을 기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Cincinnati Ballet’는 그들의 시설에 많은 건강과 안전 프로토콜을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동선이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접촉을 줄이기 위해 리허설 시간을 조정하였다. 또한 여러 개로 쪼개어진 각각의 리허설 룸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직원들과 무용수들이 집 혹은 시설의 다른 곳에서 가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발레 마스터의 가이드를 효과적으로 하고 무용수들이 원격 훈련이나 안무가와 협연할 수 있게 해주었다.
넷째, "예상치 못한 일이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투명해져야 합니다."
여기에서는 새로운 환경과 정보에 신속하게 적응하고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애리조나주의 ‘True Concord Voices & Orchestra’는 다시 프로그램을 오픈하기 위한 의사결정 과정의 일환으로 예술가와 관객 등과 함께 상의하였다. 관객, 예술가, 자원봉사자, 이사진, 직원까지 모든 구성원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하여 실내공연 참석에 대한 두려움을 확인하고, 야외행사 참석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였다.
다섯째, "첫 번째 원칙이 중요합니다. 아티스트, 직원, 파트너 및 기부자에 대한 공동의 목적의식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조직의 사명과 예술적 비전을 바탕으로 조직을 재정비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주목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다시 시작하는 조직에 활력과 추진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GALA Hispanic Theatre’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단순히 연극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모임 장소이자 소통의 창구로서의 조직의 존재 가치를 다시 깨닫고, 이를 위한 안심 공간으로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여섯째, "비디오 촬영기사와 함께하세요."
미디어 또는 기술 조직(또는 기술에 정통한 아티스트)과 파트너 관계를 맺으면 더 많은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코로나 대유행 초기에는 많은 예술조직에 양질의 비대면 프로그램 생산을 위한 전문지식, 소프트웨어 혹은 장비가 전무하다시피 했고, 재정적 제약으로 신기술에 투자하기가 어려운 도전적 상황에 직면했다. 이러한 딜레마를 인식한 일부 예술 단체는 온라인 프레젠테이션 경험이 있거나 장비 또는 전문지식을 제공할 수 있는 단체와 제휴한 예술가에게 연락하는 등 전략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보고서는 디지털에 대한 강조가 성능 그 자체를 넘어선다고 역설하고 있다.
해당 문서는 언뜻 보기에 문화예술계가 코로나19 속에서 시설 운영이나 단체의 지속을 가능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지침서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면서 곧 일반적인 지침서(안내서)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에서 제시된 6개 교훈은 성공사례를 통해 도출한 가이드라인이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에게 획기적인 운영의 기술이나 노하우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새로울 것은 없지만 지금 대부분의 예술조직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다시 한번 함께 공유하고 생각해볼 기회를 주며, 공감과 위로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본 내용보다 더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부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부록에는 인터뷰 대상 기관 사례 연구 외에 국가 서비스 기관으로부터 받은 설문조사 결과와 사례 연구 대상 기관의 담당자 인터뷰 등을 포함하고 있다.
예술기관 담당자와의 개별 인터뷰에서는 팀원의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한 해프닝에서부터 디지털 혹은 가상프로그램 제공에 대한 제약과 한계까지 구체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우리 모두의 고민을 담고 있었다. 특히 설문조사와 관련하여 디지털 전환에 대한 현실을 보여주는 결과도 함께 제시했다. 2020년 10월 말, 예술 자문 위원회(the Advisory Board for the Arts, ABA)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거의 모든 예술조직들은 전년보다 더 많은 디지털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 중 70%가 디지털 티켓을 판매하고 콘텐츠와 연결된 자발적인 기부를 요청함으로써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전체 매출 점유율은 조직마다 크게 달랐고,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조직 중 약 30%는 디지털 콘텐츠를 주로 ‘관객과 연결’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반면, 47%는 아직 수익화 계획을 수립하거나 시행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2021년 1월에 보고서를 발간한 이후, NEA는 3월 말에 다시 한번 비대면 가상 웨비나를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미국 감염병 관리 최고책임자인 앤서니 파우치 박사의 개회사에 이어 보고서에 참여하였던 3개 기관 대표들이 참여하여 예술기관 운영 재개의 도전적 상황과 기회를 모색했다. 여기서는 재개장(reopen) 이후에 제일 처음 모습을 드러낸 관객들은 장기 충성 고객이거나 지역 커뮤니티의 밀접 관계자였다는 점을 공유하면서,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통한 신뢰가 예술기관의 재도약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였다. 보고서와 웨비나 행사는 지역적으로 미국을 한정하고 있지만, 한국의 상황과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비대면 프로그램은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이나 무엇보다 예술을 경험하는 대면(in person) 활동은 비대면(virtual/online)으로 대체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 대체로 공감하고 있었다. 이는 예술가 입장에서도 관객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번 호에서 함께 살펴본 NEA 보고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문화예술계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당면한 어려움과 고통을 나누고,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며, 함께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 이야기로 볼 수 있었다. 딱딱한 보고서 형식을 띠고 있지만,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개인의 스토리를 함께 나누며 심적 피로와 창작활동의 허기를 채워주는 글이기도 했다. 수많은 지침 속에 지쳐가는 문화예술계에 응원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또 다른 우리의 이야기도 기대해본다.
연수현은 뉴욕에서 평범한 은행원으로 일하다가, 음악가인 배우자를 만나 예술행정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공연예술행정과 비영리회계 실무과정을 마치고, 75년 역사를 가진 극장 뉴욕시티센터 회계 팀에서 근무하다가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입사한 후, 문화비 소득공제, 문화예술 분야 사회적경제 등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현장밀착형 정책연구자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예술경영 468호_2021.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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