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 심의 대본 원본 공개를 통해 본 검열의 단면
글: 김현옥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 학예연구사
기록의 특성으로 꼽는 것이 진본성, 신뢰성, 무결성 그리고 이용가능성이다. 현존하는 검열의 산물인 심의 대본은 그 자체로 매우 의미 있는 정보이자 증거이다. 그러나 이러한 파편들만으로 당시의 활동 면면을 재현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기록을 생산한 조직의 정책, 관련 법규, 업무 처리 방식, 언론, 검열자와 피검열자의 증언 등 다양한 기록들이 쌓이고, 새로운 관점에서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될 때 진실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심의 대본 원본 공개는 현대 검열의 역사를 입증할 수 있는 실물 자료를 대규모로 공개했다는 점에서, 작품성 결여로 연구되거나 회자되지 못했던 반공극, 새마을연극, 버라이어티 쇼 등 시대상을 반영한 대본들도 상당수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시험은 규격화하는 시선이고, 자격을 부여하여 분류하고 처벌할 수 있는 감시이다. 그것은 개개인을 분류할 수 있고,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가시성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므로 규율의 모든 장치 안에서 시험은 고도로 관례화되어 있다.”
- 미셀 푸코, 『감시와 처벌』, 276쪽
일제강점기부터 본격화된 문화예술에 대한 검열, 통제, 감시의 역사는 해방 후에도 근절되지 않았다. 전근대적 검열 제도는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1966), 공연윤리위원회(1976),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1997)라는 기관이 답습했다. 검열은 국가 질서 유지, 사회 정화, 건전한 가정생활, 아동 및 청소년 보호 등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공연윤리위원회 회칙 제2조(임무)에 따르면 1. 헌법의 기본질서와 국가안전 및 공공질서의 유지, 2. 민족의 주체성 함양, 3. 민족문화의 창조적 개발, 4. 아동 및 청소년의 선도, 5. 가정생활의 순결, 6. 공중도덕과 사회윤리 신장의 저해 여부를 심의한다고 볼 수 있다.
1961년 5·16 직후 박정희 정권은 공연법을 개정하면서 ‘공중도덕과 사회윤리를 위해서는 영화나 연예에 대한 검열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두어 검열의 근거를 마련하고, 각종 심의기구를 만들어 통제망을 구축했다. 공연법 개정 이후 사회정화를 명분으로 한 민간자율심의기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예륜)도 그중 하나이다. 법적 근거가 없던 예륜과 달리 1975년 개정된 공연법에 따라 발족된 공연윤리위원회(공윤)는 보다 조직적인 통제를 가했다. 공윤은 발족과 동시에 ‘공연윤리강령’과 심의 규정을 담은 ‘공연윤리규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강령과 규정이라는 장치 안에서 검열은 고도로 관례화되기 시작했다. 검열자는 텍스트에 내포된 의미, 시그널 그리고 그것이 일으킬 파장을 두려워했고, 외설적, 폭력적 표현에 집착해 왔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이하 기록원)은 2021년 3월, 1960~90년대 심의 대본과 「심의위원회 규정」 등 관련 서류 6,065건을 디지털화하여 공개했다. 공개한 기록물 중 5,974건은 한국영상자료원으로부터 2018년도에 이관 받은 자료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상자료원)은 1998년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기증받아 보존, 관리하고 있던 공연예술 심의 대본 원본을 2018년 12월 기록원으로 이관하였다.
보관본이었기에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 우리는 자료의 중요성, 시급성, 시의성을 고려해 2019년 3월부터 자료 분류 작업을 시작했다. 먼저 심의 기구별로 나눈 후, 연도순, 심의 번호 순으로 배열하고, 연극, 무용, 음악, 대중, 기타 등으로 장르를 구분하여 구조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심의 과정에서 기록되었을 법한 아주 사소한 흔적(밑줄의 색깔, 모양 등), 메모도 빠짐없이 기술하여 정보적, 증거적 가치를 높이고자 하였다. 2020년 하반기에는 3차 추경 사업 예산을 지원받아 6,065건 전문을 디지털화할 수 있었다. 디지털화의 원칙은 모든 면을, 원질서 그대로 유지하되, 원본 훼손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특히나 심의 대본은 심의 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흔적이 많았기 때문에 개인정보를 지우는 일 외에는 어떠한 추가 조치도 하지 않았다.
이와는 별개로 공개 범위와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해당 분야 전문 연구자에게 먼저 공개하여 학술적, 사료적 가치를 검증해야 한다는 의견, 검열 주체(심의위원)의 흔적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는 것은 오히려 과잉해석과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는 타당한 지적도 있었다. 이에 2020년 9월 전문가 자문회의를 개최했다. 자문위원(안치운, 이봉범, 이승희)은 ‘개인의 연구수준을 넘어서는 중요한 자료로 무엇보다 자료들이 공개되어야 진정한 가치가 발휘될 수 있다.’, ‘연구에 있어 양적인 확장이 일어나야 질적인 부분도 개선될 수 있다.’, ‘기록원이 단순히 목록만 제공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연구자 제공을 위한 로드맵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내외부 의견을 종합해 올해 3월 ‘심의 대본 컬렉션’을 오픈했으나, 현재의 컬렉션은 내용, 구조,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이 아니다. 그럼에도 연구자든 일반 대중이든 누구나 전문을 열람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이 가장 선행되어야 한다고 판단해 내린 결정이다.
기록원은 영상자료원으로부터 심의 대본을 이관 받기 전부터 꽤 많은 심의 대본을 소장하고 있었다. 극작가 김의경, 연극평론가 한상철, 구히서, 전 청주대 교수 이창구, 연출가 임영웅, 연극배우 김태랑, 김화영, 마임가 김성구, 조명디자이너 최형오 등의 기증 자료에도 심의 대본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대부분은 영상자료원에서 이관 받은 대본과 같다. 이렇게 동일한 대본이 서너 권 존재하는 이유는 사전심의를 받기 위해 여러 권을 검열기관에 제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1974년도의 경우 사전심의를 받으려면 심사신청서 1부, 대본 6부(18세 미만자 관람가일 경우 8부), 줄거리 1부, 원작자의 공연승인서 1부를 제출해야 했다. 심사합격증을 발급받아 관리하던 시기도 있었다.
기록원이 공개한 디지털 심의 기록 6,065건 중 5,700여 건은 연극 대본이다. 공연윤리위원회에서 1982년부터 발간한 『심의백서』의 무대공연물 심의 통계를 보면, 유흥업소 수치를 제외하더라도 연극이 차지하는 비중은 1/3에도 못 미친다.
대중음악 관련 심의자료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자료의 행방이 묘연한 경우가 많다. 자료의 발굴과 추가 수집이 시급한 상황이다. 누락된 기록물이 많지만,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작품에 가해진 ‘파괴적인 기록’,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한 심의위원의 과도한 몰입의 흔적’을 몇 건 소개하고자 한다.
기록원이 소장하고 있는 이근삼의〈동물원의 호박꽃〉심의 대본은 다섯 편이다. 1968년 제102호, 1975년 제126호, 1976년 제45호, 1976년 제 재1호(재심 대본), 1987년 제73호가 그것이다. 1968년도에 제출한 심의 대본은 총 57쪽 분량인데, 그중 절반에 가까운 면이 수정, 삭제 표시로 얼룩져 있다. 김용락의〈열한 개의 출산〉은 1974년 제130호와 재심 대본 1974년 제130-2호를 소장하고 있다. 재심 후 대본 제목은〈출산〉으로 바뀐다. 대본 첫 페이지 상단에 적혀 있는 재심 사유는 다음과 같다.
※영아 살해 묘사, 공동변소에 꺼내온 11개의 영아 시체와 관련된 묘사 혐오감 유발
※빈곤과 관련된 사회 이면의 지나치게 참담한 묘사 등이 현 사회에 대한 대중들의 건전한 비판
의식을 오도할 우려가 있음(내용 전반)
※모든 현재의 불행을 사회의 책임으로만 돌리려는 표현 지양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 내지 모독하는 표현 지양
이근삼의〈국물 있사옵니다〉는 1975년 제175호와 제186호, 1990년 제100호, 1993년 제110호, 1994년 제218호를 소장하고 있다. 1975년 동일한 내용의 심의 대본 2편이 일주일 간격으로 접수되었다. 1975년 5월 12일에 접수된 대본에는 “본 작품은 5월 17일 자로 신청단체에서 자진 취하 하였으므로 문서처리 생략함”이라는 육필 메모가 있고, 본문에는 어떠한 가감 흔적도 없다. 반면, 1975년 5월 19일 접수된 대본에는 “자친 취하 권고, 불응 시 반려”라는 메모와 더불어 작품 파괴의 흔적이 너무나도 역력하게 남아 있다. 오태영의〈난조유사(卵朝遺事)〉는 ‘건국신화에 대한 저속한 희화화, 희곡으로서의 문학성 결여, 현실 문제와 관련하여 오해될 우려가 있는 요소가 다분히 내포되었다’는 이유로 1977년, 1980년 반려 통보를 받는다. 윤대성의〈노비문서〉는 돌연 1978년 반려 판정을 받는다. “현시점에서 본 작품의 주제가 부적당하다고 사료되어 반려합니다.”라는 심의위원의 메모가 선명하다. 박조열의〈오장군의 발톱〉은 1974년에 쓰였으나 군인을 희화화했다는 이유로 공연되지 못하다가 14년 만에 해금되어 공연되기도 했다. 또한 1984년 연우무대의〈나의 살던 고향은...〉은 심의에 제출했던 대본과 실제 공연이 달라 서울시 행정조치로 6개월간의 공연 정지 처분을 받았다.
1986년 공윤은〈금지된 장난〉(김평우 작),〈운수 대통이요〉(박재서 작),〈파수꾼〉(이강백 작) 등을 반려,〈당신들의 방울〉(최인석 작)은 수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강백의〈파수꾼〉은 ‘국가의 안전보장 문제를 비방,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갈등을 계급의식의 대립관계로 전이하여 부각시킨 내용으로 반려’ 처분을 내린다고 적고 있는데, 이러한 처분에 대응해 한국연극협회 극작분과위원회는 「공윤의 희곡작품 반려에 대한 우리들의 의견」이라는 문서를 공윤에 보냈다. 그중 일부를 인용한다.
“이러한 일련의 반려 내지 수정 권고 사태는 규제받는 작가 자신만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라기보다는 우리들 희곡작가의 표현의 자유는 물론 표현에 접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국민의 자유도 함께 제한 당한다는 의미도 된다. 따라서 공윤은 규제를 통한 사회 기강의 정상화보다는 공연예술 분야의 비평 기능에 의해 자정되기를 기다리는 여유를 가져주기를 바란다. 동시에, 우리는 공윤이 규제한 결정 내용을 아주 상세하게 공개, 홍보해야 하며, 그 결정 자체도 비평의 대상이 되도록 개방적이기를 희망한다.”
기록원은 1962년부터 1965년까지의 심의 대본을 한 건도 소장하고 있지 않다.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누락된 자료가 굉장히 많지만, 그래도 대본 전문 공개가 그간 검열의 역사, 검열을 둘러싼 해석과 논쟁을 논할 때 어려움으로 토로되었던 ‘사라져 버린 텍스트’, ‘검열의 흔적이 남아 있는 원본의 부재’에 대한 갈증을 일부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앞서 강조했듯이 현존하는 심의 대본만으로 당시를 재단할 수는 없지만, 많은 예술가, 연구자들이 강조하듯 필자 역시 예술은 국가 단위를 넘어서는 것이고, 그 안에서 건강한 논쟁과 비평이 일어날 수 있도록,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건강하다는 것은 아름답고 숭고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추하고, 때로는 매우 폭력적이며, 때로는 불온하기 그지없고, 때로는 그로테스크하다.
김현옥은 강원도 내린천에서 나고 자란 농부의 딸이다. 동양의 전통극에 매료되었던 탓인지, 연극을 전공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연극을 보다 넓고 큰 의미로 생각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을 거쳐 2010년부터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에서 가치 있는 예술기록물 수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술경영 474호_2021.1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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