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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 의의와 시사점

글: 박선영_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팀장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만들어지기까지

지난 8월 31일, 국회 본회의에서「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통과되었다. 2016년 ‘블랙리스트 사태’와 ‘예술계 미투 운동’을 통해서 예술인 권리보호를 위한 법제화 논의가 본격화된 이후, 많은 문화예술인의 노력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예술인 권리보장법 발의안의 제안 이유1)에도 잘 드러나 있듯이 그동안의 문화예술정책은 장르 중심의 진흥 및 지원 중심으로 진행됐고, 상대적으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 등에 대한 정책은 소홀해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블랙리스트 사태’와 ‘예술계 미투 운동’이라는 큰 사건을 연이어 겪으면서 예술인들의 열악한 실상과 조건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고, 예술인의 권리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법제도 장치에 대한 필요성이 공론화되었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블랙리스트 문제해결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하고,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위한 법률 제정을 약속했다. 특히, 블랙리스트 문제해결을 위해 꾸려진 TF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발표한 권고안에서 문화예술 표현의 자유 및 예술인 권리 보장을 위한 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2016년 문화예술계를 시작으로 SNS를 통한 미투 운동이 각계각층으로 확산되면서, 정부 차원에서의 문화예술계의 성희롱·성폭력 방지 대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프리랜서와 같은 프로젝트 기반 계약 종사자들이 법과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을 고려해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이 주요 대책으로 제시되었다.

어떻게 보면 두 가지 다른 배경과 맥락에 의해서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만들어졌다는 점은 흥미롭다. 하지만 그동안 예술인의 권리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왔고, 사회적·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예술인의 지위와 노동형태에서 드러나는 취약함과 같은 예술계의 특수성이 주요한 원인이라는 점이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이라는 공통된 목표로 이끌어오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2019년 예술인 지위 및 권리 보장법 제정 촉구 운동
2019년 예술인 지위 및 권리 보장법 제정 촉구 운동

예술인 권리보장법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예술표현의 자유 보장’과 ‘예술인의 직업적 권리 보호와 증진’, ‘성평등한 예술 환경 조성’을 주요한 예술인의 권리임을 밝히고, 예술인에 대한 권리 침해행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는 예술인의 권리가 선언적 가치를 넘어 예술 현장에서 벌어지는 침해 사례에 대해 보다 실질적이고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헌법 제22조 2항에서는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고 예술인의 권리를 선언적 차원에서 명시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예술인의 권리를 보호할 법이 없어 이 조항은 사실상 법적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제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제정됨으로써 예술인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이런 점 때문에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예술인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사회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기본법적 성격을 띤다고도 볼 수 있다.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27조 예술인 보호관의 역할에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보장 정책의 수립 및 시행’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러한 특징을 보여주는 예이다.

예술인 권리보장법
예술인 권리보장법의 주요 내용 도식화

동시에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예술인에 대한 권리침해가 발생했을 시, 이를 구제하기 위한 절차와 구제 기구 구성에 대한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구제 기구로는 크게 사건에 대한 조사와 행정적 실무 역할을 하는 ‘예술인 보호관’과 심의 및 의결을 담당하는 ‘예술인 권리보장 및 성희롱·성폭력 피해구제 위원회’(이하 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다. 예술인 권리침해나 성폭력·성희롱 피해에 대한 신고를 접수하면 예술인 보호관이 신고 사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조사 결과를 위원회에 보고하면 위원회는 이를 심의·의결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 결과를 실행하게 된다. 다소 복잡해 보이는 구제 절차는 예술인의 권리 보호 절차가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는 이 법이 만들어지게 된 주요한 계기였던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예술인의 권리를 침해한 가해자가 정부와 행정기관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인 보호관과 위원회의 독립성 확보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예술인권리보장법 권리구제 흐름도
예술인 권리보장법 권리구제 흐름도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 의미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예술인들이 주도해서 만든 최초의 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법을 제안하고 만드는 과정부터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와 행정기관과 협의하는 과정까지 실제로 예술인들이 직접 참여하고 개입했다. 이는 그동안 정책의 수혜 대상으로 머물러 있던 예술인이 정책의 주체로 등장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징은 법안의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계약과정에서 발생한 불공정행위에 대해 예술인들이 노동조합에 준하는 자격을 가진 예술인조합을 결성할 수 있게 하는 조항 등이 그러한 사례다. 주로 개인단위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은 예술계의 특성을 고려한 조항으로 예술계 현장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이다.

또한, 예술인에 대한 보호와 재발방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법이라는 점도 중요한 지점이다. 그동안 예술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제도가 사실상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인 권리보장법을 통한 피해구제 제도는 실제 예술계 현장에서 예술인의 인권 신장과 권리 확대를 위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가해자에 대한 구제 및 시정조치 등을 통해 예술인의 권리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함께 재발방지를 위한 효과적인 억제책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예술정책이 보편화되고 확대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예술인의 권리와 그 구체적인 사례를 명시함으로 이후 진행될 예술정책의 중요한 법적 근거가 될 것이다. 예술인 권리 보호에 대한 국가기관의 책무를 규정함으로써, 예술인의 권리가 보호 받을 수 있는 안전한 예술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정책들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정 이후, 앞으로의 과제

물론,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만으로 장밋빛 청사진을 그리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구제 기구와 철차와 같은 구체적 내용을 담고 있는 법인만큼, 제대로 실행될 수 있도록 하는 세부적 규정과 제도화에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시행령과 시행규칙과 같은 하위법령을 만드는 과정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예술인 권리보장법의 대상이 될 예술인의 범위나, 예술인 보호관과 위원회의 구성, 운영 규정 등은 현장 예술계와 적극적인 소통과 협의를 통해서 공론화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쟁점들이다.

법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많은 조항이 수정되는 과정을 거쳤다. 법을 만들면서 논의하고 검토하는 과정에서 법안의 내용이 수정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수정되는 조항이 가지는 의미나 필요성이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예술인 권리보장법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처벌 및 배상 조항이 삭제되거나 축소된 점과 예술인 보호관과 위원회의 독립성 및 권한이 축소된 부분은 법의 취지나 목적을 고려했을 때 아쉬운 점이다. 이후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더 잘 작동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법 개정 운동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예술인 권리보장법을 포함한 예술정책에 대한 예술인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다. 예술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확대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고 실행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법은 이를 위한 명분과 근거를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분명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인과 현장 예술계의 지속적인 감시와 개입, 참여의 노력은 법안의 제정만큼이나 중요하다.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통과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권리침해가 일어났으며, 예술인들은 고통 속에서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들이 있었기에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의 의미는 우리에게 분명 남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그렇기에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정은 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술인에 대한 권리침해의 역사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고, 예술인의 권리가 사회적으로 확대되는 변화의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1) 예술인 권리보장법 발의안(2020. 6. 1., 김영주 대표 발의): 우리나라 예술 관련 법령은 그간 장르 중심의 지원 근거와 체계를 마련하는 내용으로 집중되어 왔고, 상대적으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 등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에는 부족함이 있었음. 그러한 상황에서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태’와 ‘예술계 미투 운동’ 등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를 침해하는 사태가 연이어 발생하여 많은 예술인들이 직·간접적 피해를 본 바, 불공정한 예술 환경과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인 예술인의 삶을 구제할 수 있는 법령을 제정해야 한다는 예술계의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임.

  • 박선영
  • 필자소개

    박선영은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에서 문화민주주의와 문화적 가치의 사회적 확대를 위한 문화정책, 문화연구, 문화운동 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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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예술경영 예술경영 477호_2021.12.09. 정보라이선스 정보공유라이선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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