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제도읽기] 예술사후지원제도
정광렬 _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기획조정실장
문예진흥기금의 성과와 지속적인 지원방식 개선에도 불구하고, 획기적인 지원제도 개선이 추진 중이다. 2009년 정기공모사업에 전면적으로 도입된 사후지원방식도 그 중의 하나이다. 사후지원은 선택과 집중, 사후지원, 간접지원, 생활 속의 지원, 지역협력 확대 등과 연계되어 있고,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책임심의관제와도 연계되어 있다. 그렇지만 다른 대안과는 달리 개념과 운영방식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2009년 도입된 사후지원은 주로 사전-사후 단순 분할 방식으로 도입되고 있다.
문예진흥기금은 지원신청건수의 과다에 따른 사전심의의 불충분, 공정성 미흡, 지원신청액과 실제 지원금 교부액의 차이에 따른 사업계획서의 충실성과 실현가능성, 사후관리 및 환류의 미흡 등의 구조화되어 있어 근본적인 개선이 요구되어 왔다. 특히 정책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기 어려운 예술의 특성상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는 성과관리와 효율성 제고를 더욱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사후지원 제도는 목표를 명확히 하고 불공정성 및 낮은 신뢰도를 개선하여 문예진흥기금의 성과제고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원대상 단체는 책임성을 강화하고, 실질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사업의 충실성, 일치성, 성과제고를 위하여 노력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성과지향적 결과지향적 지원방식
사후지원방식이란 협의의 관점에서 지원금 교부시점의 사전-사후 여부에 상관없이 지원심의를 통하여 지원대상 또는 지원대상 후보를 선정한 후 집행과정 및 사후 평가를 통하여 최종 지원 여부 또는 지원성과에 따른 차등지원, 지속적 지원여부를 결정하는 지원방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후지원방식은 일정한 지원자격을 갖춘 단체를 대상으로 당초 설정한 목표나 기준의 충족 및 실행여부에 따라 사후에 지원하는 방식을 말하는 것으로 지원액을 모두 사후에 지원하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전 또는 사후(진행 중)에 심의하고 이를 사후 또는 사전-사후로 분리하여 차등 지원하는 것이 핵심적인 기준이 된다. 즉, 지원심의와 평가를 분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심의와 평가를 연계하여 사업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성과관리제도이다.
따라서 사후지원제도의 단순히 지원금을 사후에 지급하는 사후지원(Ex post)이라는 절차보다는 성과지향적 또는 결과지향적(performance-based or result-oriented art fundings) 지원방식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사전에 설정된 기준이나 목표를 근거로 지원심의를 거치지 않고 사후에 보상 차원에서 단순히 추가지원하거나 시상을 하는 프로그램이나 방식 등은 엄격한 의미에서 사후지원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후지원방식은 지원심의ㆍ평가 및 지원금 지급방식에 따라 다음과 같은 3가지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사전심의 후 사후 전액지원방식이다. 사전 지원심의를 거쳐 지원대상 후보를 선정한 후 집행과정-사후 평가를 거처 사후에 해당사업에 대한 지원금을 전액 또는 성과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방식이다. 둘째, 사후 추가지원 방식이다. 사전 지원심의를 거쳐 지원대상 후보를 선정한 후(사전 전액지원이 별도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집행과정-사후 평가를 거쳐 사후에 추가사업 또는 재공연 등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셋째, 사전-사후 차등분할 지원방식이다. 사전 지원심의를 거쳐 지원결정 후 사전과 사후로 분리하여 지원금을 분할 지급하거나 차등 지급하는 방식이다. 여건에 따라 중간단계에 지급이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정해진 조건을 충족하였을 경우에 지급하고, 사후 지원은 조건의 충족여부 또는 성과에 따른 차등지원 등에 따라 달라진다.
사후지원방식은 다년간 지원방식과 유사한데, 다년간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지원조건의 충족여부, 분할 지급 등에서 실질적으로 구분하기가 어려우며, 이 때문에 선택과 집중의 지원방식은 사후지원방식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다년간 지원은 2차년도 사업계획이 명확하게 확정되지 않고, 다시 심의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다르다.
사후지원방식은 서울문화재단과 경기문화재단에서 무대공연작품 제작지원 등 일부사업에 대해서 도입하고 있지만, 전면적인 도입과 시행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싱가포르 예술위원회 일부 사업, 북아일랜드예술위원회 대부분의 사업에 사후지원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영국이나 미국은 사후지원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는 않지만, 엄격한 관리방식, 분기별 지급방식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성과목표 분명한 사업부터 단계적으로
사후지원방식은 지원의 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으로 일부가 아닌 모든 지원프로그램과 구조에 원칙적으로 도입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후지원제도의 전면적 시행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전면적인 사후지원 시행이 자칫 열악한 예술계의 자생력을 더 낮추지 않도록 고려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사후지원은 성과목표가 분명하고 적용이 가능한 사업에 한하여 적용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대상사업은 프로그램별 지원대상수가 작거나 규모가 큰 사업에 우선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2010년도에 문예진흥기금의 대폭적인 변화가 예상되는데, 성과관리, 목표와 평가기준의 명확성, 성과제고를 위한 전략적 행동의 유인 등 목표와 가치에 대한 공론화를 통한 합의가 선행되고, 지원금을 지급하는 절차적 방식을 검토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예술지원에서는 장르별, 사업특성별, 지원단체로 각기 기준과 방식이 달리 적용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시각예술과 공연예술, 창작공연과 재공연, 신규행사 및 연례행사는 각기 다른 기준이 달리 적용될 필요가 있다. 또한 선택과 집중 방식 위주로 전환되는 예술위원회 차원에서는 전반적인 적용이 가능하지만, 지역에 보다 밀접하게 접근하여야 하는 소규모 지역사업에서는 전반적인 적용은 어렵다. 사전-사후 지원방식에서는 여건을 고려하여 사전 지원비율을 사후 지원비율보다 높이도록 하고, 사후지원은 정해진 금액을 분할 지급하는 방식보다는 평가에 따라 차등 지원 및 우수사업에 대한 추가 인센티브가 가능한 방식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즉, 새로운 규제의 차원에서 지원금 삭감보다는 인센티브의 관점에서 접근하여야 예술계의 호응과 성과 달성에 기여하게 된다.
지원 프로세스 관리 명확하고 정교하게
전수평가가 전제되는 사후지원방식의 성공적 시행을 위해서는 지원프로세스와 관리가 명확하면서도 정교화 되고 효율성을 가져야 한다. 평가관리에서의 거래비용을 최소화하고, 실현가능성, 예술성 평가에 따른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사업규모에 따른 차등적인 평가방법이 필요하다. 즉, 지원대상수가 많은 사업의 경우에는 사업의 충실성, 일치도, 성과달성도 등 서면평가 중심으로 시행하고, 지원대상수가 적거나 지원규모가 큰 사업의 경우에는 질적 평가를 병행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사후지원방식은 심의와 평가가 연계되는 방식이므로 심의결과와 평가결과와의 차이를 비교하여 환류 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사후지원방식은 사전심의-사전지원 방식보다는 평가결과에 대한 부담과 공정성이 더욱 커지게 된다. 따라서 평가결과에 대한 이의제기 절차 도입을 통한 공정성 및 신뢰도 제고를 위한 제도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사후지원방식의 평가관리에서는 자연스럽게 외부의 비상임 심의위원ㆍ평가위원 보다는 사무처나 상근 평가위원의 역할이 강화되어 현재 검토 중인 책임심의관제나 사무처의 예비심의 및 평가 등과 연계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 총 경비 대비 지원금 상한 비율 설정, 경비의 인정기준 설정과 연계하여 지원신청서대로 지원금을 지급하는 원칙을 수립하고, 이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기공모방식보다는 수시신청 수시지원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술계, 변화에 적극 대응 필요
사후지원방식은 예술계의 영세성, 자생력 미흡, 외부재원 확보의 한계 등 현재 여건에서 오히려 역기능이 발생할 수도 있다. 평가결과 지원대상에서 탈락되거나 축소될 경우 정부정책에 대한 불만이 제기될 수 있다. 또한 기금관리 차원에서는 사업과 지원이 동일 기간 내에 이루어지지 않고 탄력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세밀한 관리체계가 필요하다.
예술계는 이제 더 이상 특수성만을 주장하거나, 과거의 관행에 젖기보다는 변화에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 지원을 받기 위하여 사업계획이나 예산을 부풀리고, 실제 실행은 이와 상당히 달라지는 관행을 되풀이하게 되면 더욱 더 신뢰도가 낮아지게 된다. 또한 지원으로 사업이 이루어지거나 지원규모에 맞추어 사업이 이루어지는 것보다는 명확한 사업계획과 가치를 보여주어야 지원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일부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관행은 단지 특정 단체에게만 불이익이 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 예술계 및 시민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을 고려하여야 한다.
한계와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후지원방식 도입과 확대는 가속화될 것이다. 사실 그 성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후지원방식은 문예진흥기금을 중심으로 예술지원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획기적인 방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위해서는 예술분야의 특성을 이해하고 정부와 예술인 간의 상호 이해가 선결되어야 하며, 지원의 성과제고, 예술단체의 역량강화에 기여할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사후지원방식의 성과 달성여부는 이제 그 필요성에 대한 논란보다는 정부와 예술계가 이 제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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