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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정보팀
지난 5월 미국작가조합(WGA)의 파업을 시작으로 7월에는 미국 배우조합(SAG)까지 총파업에 들어섰다. 국내 웹툰·웹소설 표지 업계의 반발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모든 이슈의 중심에는 생성형 AI가 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미술계에도 인공지능이 그린 작품이 해외 옥션에서 고가에 낙찰되고 국제 대회에서 수상하며 한바탕 논란의 바람이 불기도 했다. 생성형 AI와 창작자 간의 갈등이 식을 줄 모르는 가운데, 미술시장의 유통업계에서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미술 유통영역의 전문가들과 함께 AI(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인한 미술계의 변화를 살펴보고 AI 시대에 미술시장은 어떤 준비가 필요할지 의견을 들어보고자 제2차 시각예술정책포럼을 진행하였다. 발제는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의 이탁연 교수와 AI를 활용하여 활발한 작업을 하고 있는 노상호 작가가 준비하였다. 토론을 위한 패널로는 백남준아트센터 이채영 학예실장, 서울옥션 정태희 팀장, 티나킴갤러리의 이단지 디렉터가 참여하였으며, 모더레이터는 중앙SUNDAY 문소영 기자가 진행하였다.
카이스트에서 인공지능 경험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는 이탁연 교수는 생성형 AI의 원리와 사례에 대해 발표하였다. 인공지능 생성 모델은 일반 인공지능과는 다르게 특별한 후처리나 가공 없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하여 유사한 특징이 있는 결과물을 생성해 내는데, 일반적인 콘텐츠 외에 유전자 정보, 도면 등 구조화된 정보도 생성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생성 모델은 프롬프트(명령어)를 이용해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데,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기 위한 프롬프트에는 매우 구체적이고 풍부한 묘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외부 요청으로 학생들과 10시간가량의 해커톤을 통해 학습 데이터가 거의 없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오직 프롬프트에 의지하여 그의 영정사진을 만들었던 사례를 소개하며 구체적인 프롬프트 활용법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생성 AI가 창작자를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생성 AI는 카메라, 포토샵처럼 예술가를 돕는 유용한 툴(도구)일 뿐, 순수미술의 측면에서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했다. 물론 게임 및 웹툰 업계의 초급 일러스트레이터와 같은 일부 상업미술 영역에서는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전하며, 현재도 프롬프트 엔지니어로 대체되는 부분이 생기고 있어 향후 기계적인 묘사가 가능한 작업은 창작의 영역에서 밀려날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앨범 커버 작업으로도 유명한 노상호 작가는 인터넷상(가상환경)에 떠도는 이미지를 매일 수집하여 다양한 작업을 통해 변형된 이미지로 만들어 낸 뒤 다시 가상환경에 업로드하여 순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가상환경에 돌아다니는 여러 이미지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매체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3D, AI 등을 자연스레 접하며 작업에 활용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노상호 작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계를 오가며 작업하는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글리치(Glitch ,일시적 오류)에서 느껴지는 예술적 경험을 영상과 함께 소개했다.
생성 AI의 등장이 작품 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앞서 발제한 이탁연 교수와 의견을 같이했다. AI라는 하나의 매체가 등장했을 뿐, 주체적인 예술가의 역할을 생각해 본다면 작가에게 유의미한 영향을 끼칠 것 같지 않다는 의견을 전했다. 오히려 주변 창작자들 사이에서는 생성 AI의 학습 데이터에 대한 저작권 이슈를 논의하는 편이며, 학습 데이터로 작가의 작업물이 사용될 때 비용을 받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는 의견을 끝으로 발표를 마무리하였다.
이처럼 AI의 등장이 창작자의 대체 개념보다 예술적 활동을 돕는 ‘도구’로서의 개념에 더 가깝다는 의견이 공통적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예술의 도구로서 AI가 어디까지 활용될 수 있을지, AI가 시각예술 분야에 미칠 변화와 그에 따른 필요 방안은 무엇일지 문소영 기자의 진행으로 토론이 이어졌다.
이탁연 교수는 앞서 말했듯 카메라나 포토샵처럼 AI도 예술가를 돕는 도구로서는 활용 범위가 매우 넓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생성 AI는 학습 데이터가 풍부해야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학습 데이터를 플랫폼화, 서비스화할 수 있는 산업이 먼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태희 팀장은 생성 AI와 같은 새로운 아트 영역은 지속적인 거래나 전시를 통해 유통 사례가 쌓여야 하나의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으나, 아직 시장으로 발전하기에는 국내·외적으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단지 디렉터는 ‘미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미술의 정의가 모호한 것처럼 AI 작품과 기존 작품을 구분 짓기보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시대 변화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노상호 작가는 ‘무엇이 미술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공감하며, 다양한 형태의 미술로 다양한 수익 구조를 만들어 내는 사례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전통적인 미술시장에서는 페인팅(회화)이라는 특정 장르만을 미술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 시장 확장에 제약이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이에 이단지 디렉터는 창작자의 입장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유형, 즉 오브제가 아닌 작품을 작업할 때는 판매 기준이나 소장 방법 등을 작가 스스로도 준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작품을 꼭 하나의 오브제로 만들 필요는 없지만, 어딘가에 소장될 때는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 오브제가 아닌 작품을 위주로 소장하고 있는 기관들은 어떨까.
이채영 학예실장은 미디어아트를 이해하는 데 있어 ‘미디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질문을 던졌다. 미디어 자체가 던지는 ‘메시지’에 주목하고 이것을 해석하는 매클루언의 미디어 이론이 AI의 역할과 맥락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결국 AI라는 기술이 만들어내는 이미지 자체에 주목하기보다는 기술에 대한 예술가의 해석과 맥락으로 만들어진 것을 예술적 측면에서 고려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질문을 제기했다. 이런 측면에서 AI 기술을 토대로 한 예술 작품의 유통, 보존에 대한 고민 역시 다소 신화화되긴 하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유효한 예술가의 수행과 작품의 미학적 경험에 근거해 작동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전했다.
이에 이탁연 교수는 앞서 나온 예술가가 만드는 글리치에 대해 다시 언급했다. 작품에 글리치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생성 AI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잘 나왔다, 소스로서 쓸만하다’라는 느낌은 들지만, 예술가가 주는 아티스틱함을 느끼기는 어려운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단지 디렉터 역시, 오차 없이 완벽한 작품보다 엇박자로 만들어지는 예술적 감동에 대해 깊이 공감했다. 이채영 학예실장은 1964년에 백남준 작가가 <로봇 K-456>이라는 로봇을 처음 만들 당시, 완전히 실험적인 아이디어 하나로 시대의 통념을 뒤집어 표현했음을 언급하며, 결국 예술가의 실험적인 시도나 오브제가 되지 않는 예술에 대한 열린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이에 모두가 동의했다.
조소현 팀장은 정책적인 지원에는 현재 센터에서 발간하고 있는 미술시장 실태조사와 같은 통계 자료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새로운 아트 영역을 조사 범위 안에 어떤 식으로 포괄하여 지원에 반영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정태희 팀장은 AI가 미술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AI 작품은 창작 주체가 모호하여 AI 작품과 AI를 활용한 작품(작가 개입)의 구분이 필요하며, AI가 복제한 작품에 대한 진위 판별 여부나 책임 주체에 있어서도 아직은 우려의 여지가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또 향후 AI로 인해 미술시장에 새로운 작품들이 창작되는 것과는 반대로 기존의 순수미술 작품들은 어떻게 재해석하고 재생산할 것인지에 대한 법적 논의가 함께 필요할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문소영 기자는 기술이 발달할수록 전통적인 의미의 시장에서는 기존의 역할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점에 대해 일반 대중과 정책 기관들이 계속해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할 것이라 전했다.
AI가 미술시장에 위기가 될지, 넘어야 할 도전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번 포럼에서 모두가 동의한 것처럼 다양한 유형의 미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적합한 제도를 논의해 본다면, AI와 함께 미술시장이 더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예술경영 494호_2023.0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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