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로보는예술시장] ‘작가의 생존과 자기계발을 위한 전략’
김윤섭 _ 한국미술경영연구소, 미술평론가
미술시장의 변화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비록 외부적인 요인으로 미술시장의 외형적인 부피나 경제상황은 힘들어졌다지만, 근간을 이루는 체질은 빠른 속도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뭐라 해도 시장의 범위이다. 얼마 전까지 국내 미술시장과 해외 미술시장의 경계는 뚜렷했다. 어쩌면 둘은 별개의 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양상이다. 국내와 해외의 구분은 없어지고, 오히려 해외 시장을 먼저 염두에 두고 활동 거점을 삼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렇다면 한국의 미술가들은 해외 시장에 대해 얼마나 흥미를 느끼고,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이와 관련해 미술경제 월간지인 [아트프라이스]의 지난 10월호 기획기사가 흥미를 끈다. 6월에 홍익대학교 문화예술 MBA와 함께 진행된 '작가의 생존과 자기계발을 위한 전략'이란 제목의 세미나 내용을 기사화한 것이다.
[아트프라이스] 기사에 언급된 통계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작가 370명 중에 77.2%가 해외시장에 진출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의 대부분의 작가들이 해외 미술시장 진출의 꿈이 간절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방법을 알고 있는가"';란 질문에 불과 20.4%만이 ';알고 있다';는 답변이었고, 무려 74.1%는 ';모르고 있다';고 했다. 이는 꿈과 현실의 갭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이다.
해외 시장, 관심은 많지만 접근은 막막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의지만 있고 방법을 모르는 이들까지 기다려줄 만큼 시장의 흐름이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지금은 소위 '트렌드 전성시대'이다. 잠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트렌드가 생성되고, 현대인은 그 수많은 기류와 시류에 빠르게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정작 트렌드 생성의 주인공이어야 할 작가만이 손 놓고 있는 격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해외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작가들에게 A/S를 해줄 제도적 장치나 기관의 출현이 절실할 뿐더러, 국가적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미술가들 역시 '해외 시장 진출의 가장 큰 난제'로 ';재정문제';(44.5%)와 ';에이전트의 부재';(38.9%)를 꼽았다. 다음으로는 ';언어문제';(16.6%)가 뒤를 이었다. 재정이나 전문 매니지먼트 채널 확보 등은 작가 스스로 해결하기에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시기적으로 해외 홍보를 대행 혹은 전담해주는 전문회사의 출현도 속속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장 시급한 과제, "미술품 마케팅을 위한 기관 형성"
흔히 예술가들을 '이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노마드'로 비유한다. 그러다보니 현실적인 감각이 떨어진다. 대개 경제적인 풍요로움과도 거리가 멀다. 과연 미술가는 뭘 먹고 살까. 미술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미술품의 유통도 크게 늘었다. '미술품이 돈이 된다'는 시각이 확산되면서 작가의 주된 수입원으로 작품판매가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작품을 판매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95%가 ';그렇다';는 응답이었다. 작품 판매의 경로는 개인이 참여한 전시회(42.7%)와 아트페어(33.8%) 등 전시회였다는 의견이 80%에 육박했다. 과거 작업실이나 개인적인 친분에 의존했던 양상과는 많이 달라진 현상이다.
미술시장의 또하나의 주체인 작가들은 지금의 미술시장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무엇을 꼽고 있을까. 그 첫 번째는 '미술품 마케팅을 위한 기관 활성화'가 33.0%였으며, '객관적인 작품가격 형성'이 26.3%, '국가차원의 지원책 마련' 25.0% 순으로 꼽혔다. 여기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객관적인 작품 가격' 대목이다. 가격이야말로 시장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중추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미술시장의 작품 가격 체계는 작가들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건강한 시장은 건전한 수요자의 확산에서 비롯되고, 그 수요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것이 다름 아닌 '투명한 가격 체계'일 것이다. 현재 이런 미비점을 보완하기위해 사단법인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출범한 상태이다. 점차 확장되는 미술시장의 몸집을 감안한다면 조속한 시기에 이런 단체나 기관이 활성화 되어야 할 것이다.
경쟁력을 위한 작가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다
제아무리 지원이 충분하다 해도 활동주체인 작가의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헛일이다. 작가들 역시 스스로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한 자구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에선 '전시를 개최했을 때 화랑이 제대로 홍보를 해주지 않았다'는 의견(41.3%)이 지배적이며, 스스로 홍보를 위한 방안 중에 '카탈로그를 이용한다'(40.4%)는 예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홍보회사가 등장한다면 홍보문제를 위탁하겠다'는 의견이 69.3%나 됐다. 이는 시장의 변화에 긍정적으로 대처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반면에 그만큼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에는 게으른 현실이란 점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급변하는 미술시장에서의 살아남기 위한 '사활의 노력!', 이젠 남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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