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제도읽기] 아트 레지던시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나

최창희 _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컨설팅팀

초기 폐교 활용의 레지던시와 달리 민간에서 활성화시킨 아트 레지던시들에 작가들이 열광하였던 것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창작력을 고취시키거나 대중과의 소통의 자리를 제공하는 등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10여 년 기간 한국미술의 눈부신 발전에 아트 레지던시도 일정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레지던시의 해'라는 말이 미술계에는 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독 올해 적지 않은 레지던시가 새로이 문을 열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창작팩토리라는 타이틀로 서울 시내 여러 곳에 레지던시를 개관하였으며, 인천시에서 아트플랫폼을 개관함과 동시에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함께 시작하였다. 또한 경기도에서 경기창작센터를 10월말 대대적으로 오픈하였다. 한 해에 하나의 레지던시가 생겨도 놀라울 일일 텐데 갑자기 여러 곳에서 이러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니 미술계는 어안이 벙벙하다. 올해, 동시다발적으로 아트 레지던시가 생겨난 것이 우연의 일치일까? 이러한 레지던시는 모두 같은 역할과 기능을 하는 것일까?

아트 레지던시는 일반적으로 미술창작스튜디오로도 불리며, 아트 스튜디오(Art Studio)라는 이름으로도 운영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아티스트 커뮤니티(Artist Community), 아트 콜로니(Art Colony), 아트 빌리지(Art village) 등으로도 운영되고 있으며, 가장 일반적으로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프로그램(Artist-in-Residence Program), 아트 레지던시(Art Residency)로 일컬어진다.1) 이러한 아트 레지던시는 그 이름으로도 알 수 있듯이 예술가들이 함께 거주하면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지원 및 창작지원 프로그램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집단창작촌이라 불기우기도 하였다.

한국에서 아트 레지던시는 1990년대 후반에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초기에 폐교 등을 개조하여 예술가들에게 창작공간을 지원해주는 사업으로 시작되었던 것이 90년대 말 단순 공간지원이 아닌 창작 지원 및 작가 육성 등의 목적으로 한 민간 아트 레지던시가 활성화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전국적으로 공공미술관 등 여러 곳에서 아트 레지던시를 운영하게 되었으며, 최근에는 상업화랑에서도 이를 활용하고 있다. 초기 단순 공간지원사업에서 점차 창작지원의 성격을 가지게 되고, 국제교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면서 아트 레지던시는 보다 그 기능과 역할이 다양해지고 있다.


공간지원에서 창작지원, 작가육성으로

미술창작공간지원사업으로 시작된 아트 레지던시로는 지방의 폐교를 임차, 개조하여 우수한 젊은 미술가들에게 작품 제작 공간을 지원해준 논산미술창작실과 강화미술창작실이 있다. 이 두 곳 모두 1997년에 시작되었다. 이후 2000년을 전후로 아트 레지던시는 보다 활성화되었는데, 이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공립기구가 아닌 사립기관인 쌈지스페이스와 영은창작스튜디오이다. 쌈지스페이스는 1998년에 암사동 옛 쌈지사옥을 개조하여 작가스튜디오를 운영하다가 2000년 홍익대 부근으로 이전하면서 갤러리와 공연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 운영과 함께 본격적인 아트 레지던시를 선보였다. 영은미술관은 오랜 준비기간 끝에 2000년 9월에 영은창작스튜디오(당시 경안창작스튜디오로 개관) 운영을 시작하였다. 영은창작스튜디오는 경기도 광주의 넓은 부지에 미술관과 함께 입체동, 평면동, 연구동으로 구성되었으며, 좋은 자연환경 속에 넓고 쾌적한 작업공간을 갖추었다. 쌈지스페이스는 '홍대 앞 문화' 이미지의 한 아이콘과 쌈지작가라는 트랜드를 만들어 낼 정도로 활발한 활동력을 보여주었다.
 

영은창작스튜디오 평명동 전경(좌), 영은창작스튜디오 평면 스튜디오(우)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이 운영하는 창동미술창작스튜디오(2002년), 고양창작스튜디오(2004년)가 건립되면서 아트 레지던시는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초기 폐교를 활용한 미술창작실은 단순 공간지원의 성격과 함께 접근성이 떨어져 많은 한계점을 지녔다면 영은창작스튜디오나 쌈지스페이스 등의 레지던시는 미술관이나 전시공간과 함께 운영되어 보다 특색 있는 창작공간지원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공간지원의 기능을 넘어 창작력 고취를 통한 작가육성 등의 다양한 역할 등을 하게 되었다.

아트 레지던시는 그 후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거의 매해 1~2개 이상의 레지던시가 설립 운영되고 있다. 창동/고양창작스튜디오에 이어 2006년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서울시립미술관 운영), 2007년 청계창작스튜디오(서울시설관리공단 운영),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청주시) 등 정부 및 지자체에서 아트 레지던시를 많이 설립하였다. 상업화랑에서 운영하는 아트 레지던시 중에는 장흥아뜰리에가 있다. 최근에는 프로젝트 성격의 단기 레지던시도 운영하기도 하면서, 비교적 다양한 유형의 아트 레지던시가 진행되고 있다.

 

 

 

국공립

사립

서울 창동미술스튜디오,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서울시 창작공간 금천, 신당 예술공장 외 2곳
(총6곳)
보다 레지던스 프로그램 외 1곳
(총2곳)
8곳
경기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 경기창작센터 외 2곳
(총4곳)
영은미술창작스튜디오, 금호창작스튜디오, 장흥아뜰리에 외 11곳
(총14곳)
18곳
그 외 인천아트플랫폼(인천), 팔각정스튜디오(광주),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충북) 외
(총29곳)
오픈스페이스배, 아트팩토리 숨(부산), 담양미술창작스튜디오 외
(총12곳)
41곳
[표1] 국내 아트 레지던시 운영 현황2)



유휴시설 활용 레지던시 잇달아 개관

그러던 중에 올해 비교적 큰 규모의 아트 레지던시가 여러 곳에서 생긴 것은 이례적이다. 서울시에서 '유휴시설을 활용한 예술창작공간조성'이라는 기치아래 '서울시 창작공간'으로 '금천예술공장', '신당창작아케이드' 등의 아트 레지던시를 개관하였다. 특히 '문래예술공장'은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재래공업단지에 자생적으로 정착한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조성되었다. 9월에 개관한 인천아트플랫폼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인천광역시가 구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중구 해안동의 개항기 근대 건축물 등을 활용하여 조성한 것이다. 10월 말에는 레즈아티스 컨퍼런스 개최와 함께 경기창작센터가 문을 열었다. 경기창작센터는 경기도 안산시 선감도의 (구)경기도립직업전문학교를 리모델링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는 일제시대에는 포로수용소였으며 전후엔 고아원이었던 곳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역사적 공간이다.

최근 개관한 아트 레지던시는 도심의 유휴시설을 재활용하였다는 면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도시 근대화 이후 계속적인 빠른 성장에 따라 이제는 불필요한 산업시설 등이 곳곳에 생기게 되었으며, 이는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유휴시설을 문화공간으로 재활용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특히 아트 레지던시로의 활용은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지원과 함께 지역사회에 문화적으로 기여하도록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의의를 지니게 한다. 이러한 예는 외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프랑스 파리의 르성캬트르(Le 104), 중국 북경의 따산즈798(大山子789), 일본 요코하마의 뱅크아트1929(Bank Art 1929) 등을 들 수 있다.
 

1. 인천아트플랫홈 2. 인천아트플랫홈 조감도 3.금천예술공장 전경 4. 금천예술공장

앞서 언급하였듯이, 아트 레지던시는 초기의 공간지원의 성격을 넘어 창작활동지원의 성격으로 워크숍, 오픈 스튜디오, 전시회 개최 등은 물론 지역 연계 프로그램, 비평가 및 큐레이터 초청 작가프리젠테이션, 작가홍보, 국제교류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확대 운영되고 있고, 레지던시 시설도 창작을 위한 보다 쾌적한 시설들을 제공하는 곳도 여러 있다. 각각의 레지던시는 지역에 따라, 시설에 따라, 운영 프로그램에 따라 다양하게 운영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 면면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별성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시설의 좋고 나쁨의 차이는 보이지만, 운영프로그램은 위에 나열된 프로그램의 일부 혹은 전부이다. 아트 레지던시의 개화기, 레지던시 전성시대라고 명명될 정도로 레지던시가 활발하게 운영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전문적인 운영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이기도 하다. 전문적인 프로그래머와 레지던시 간 네트워크에 대한 필요는 진즉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정부 및 지자체는 가시적 성과로서 레지던시 개관에는 열중할 뿐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것들은 시설을 개관하는 것보다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데다가, 성과를 얻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원이 박하다.


양적 확대 질적 다양성으로 이어지도록 전문 운영 필요

초기 폐교 활용의 레지던시가 활성화되지 못하였던 것은 고립된 창작공간도 문제이기는 하였지만 열악한 작업환경에다가, 별다른 지원 없는 창작공간은 작가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질 못하였기 때문이다. 민간영역에서 활성화시킨 아트 레지던시들에 작가들이 열광하였던 것은 창작공간에 적합한 시설에 대한 것이기도 하였지만 문턱이 높은 미술관 등에서의 전시가 가능한 것이었고, 이와 더불어 워크숍, 오픈스튜디오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창작력을 고취시키거나, 대중과의 소통의 자리를 제공하는 등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때문인지 한국현대미술은 지난 10여 년 기간 동안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더욱이 최근의 유휴공간을 활용한 아트 레지던시는 다양한 기능과 함께 복합문화공간으로 그 역할을 더 하고 있다. 낙후된 시설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지역의 문화 및 경제를 활성화한 예는 세계적으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아트 레지던시로 운영하는 것은 살아 숨 쉬는 문화공간으로 만들기 때문에 더욱 장려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 아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에 도움이 되기도 하였지만, 때론 많은 프로그램에 작가들이 시달려 작업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거나, 오히려 창작에 해가 되기도 한다고 하니 무조건 환영할 일은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레지던시의 전문적인 운영과 레지던시 간의 네트워크 등이 제기되는 것이다.

많은 창작지원공간이 생기는 것은 작가들에게는 반길 만한 일이다. 그러나 작가들에게 단순히 공간을 지원하는 것은 그리 큰 의미를 가지 못한다. 단순히 공짜 작업실이 생겨서, 레지던스 입주 작가가 되면 소위 잘나가는 예술가가 되기 쉬어서가 아니라 예술가의 창의성을 자극하고, 보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고, 세계적으로 소개되거나, 지역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거나 예술가의 작품이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아트 레지던시가 해야 할 무엇보다 더 중요한 일일 것이다.





 

1) 본 글에서는 아트 레지던시, 레지던시로 통일하여 사용하겠다.
2) 표1의 국내 레지던시 운영현황은
http://online.arko.or.kr, 월간미술2008년8월호 특집기사를 참고하였음. 2008년 이후 신설된 아트 레지던시가 다소 많은 데다가, 쌈지스페이스가 문을 닫는 등 운영의 변경사항이 다소 많음.




최창희  

필자소개
최창희는 영은미술관 큐레이터로 개관전을 준비하였으며, 두번째 전시인《만남과 표현-장애와 비장애의 사이에서》전을 기획하였다. 그 후 독립큐레이터로 다년간 활동하며 주안미디어문화축제의 블로그특별전《블로그.이름을불러주다》를 기획하고, 심포지엄 '예술공간으로서의 블로그 모색과 제안'을 기획하기도 하였다. 현재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미술시장 실태조사 사업을 담당하고 있으며, 홍익대학교 미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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