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로보는예술시장] 2009 한국 미술계의 힘
김윤섭 _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 미술평론가
매해 연말이면 각종 순위차트 발표가 이어진다. 특히 많은 인원이 참여한 설문결과라면 한해를 가장 뜨겁게 장식한 이슈들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한 눈에 알아보기에 용이하다. 가령 미술계에선 세계적인 월간 미술전문지 [아트리뷰]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베스트 100위'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결과는 단순히 누가 1위인가보다 각 순위의 변동으로 '최근 미술계의 흐름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를 들어 위의 조사 2009년 순위를 보면 가장 잘나가던 지난해 1위 데미안 허스트가 48위로 급락한 것이나, 그의 아트비지니스 파트너 찰스 사치가 역시 14위에서 72위로 고속 하강했다는 점 등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작년에 1위부터 상위권을 차지했던 아트딜러들의 순위가 한참 뒤로 밀린 대신, 그 자리를 전시기획자들이 차지했다는 점은 무엇을 얘기하는 것일까. 이는 아마도 갑작스럽게 맞은 세계적인 대공황, 경제 불황의 영향일 것이다. 장기 침체국면에 들어가 개점휴업 상태인 현재의 미술시장에서 딜러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잠정 휴지기에 때맞춰 양질의 작품들이 늘어나면서 동시에 주목받고 있다는 점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홍라희, 서울시립미술관, 갤러리현대 각 부분 1위
그렇다면 '한국 미술계를 움직이는 대표적인 인물'은 누구일까? 국내 미술경제월간지 [아트프라이스]의 발표에 따르면, 정답은 리움삼성미술관의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이다. 그것도 5년 연속 1위를 이어오고 있으니, 홍라희 전 관장은 명실상부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결과는 국내의 미술경제월간지 [아트프라이스]는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함께 지난 2월 1일부터 12월 15일까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른 것이다. 미술인과 일반인 6,865명이 참여한 이번 조사는 주로 아트페어, 화랑, 미술관 등 다양한 미술관련 장소와 온라인 리서치(www.artprice.kr)를 통해 실시되었다고 한다. 이 설문결과를 참고해 '한국 미술계를 이끄는 분야별 순위'를 살펴보자.
우선 '가장 가고 싶은 전시장'의 미술관 부문은 서울시립미술관, 한가람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 삼성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이 1위~5위를 차지했다. 서울시립미술관(관장 유희영)은 3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서울시립미술관이 그동안 선보인 전시들이 대중적인 인기가 담보된 국내외 블록버스트급 대형전시였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최근 일반인의 미술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나면서 자연히 전시 흥행성적도 높아졌을 것이다. 특히 유희영 관장은 '한국 미술계를 움직이는 인물부문'에서 2년 연속 3위를, '대표적인 생존작가 부문'에서도 5단계 상승한 11위를 차지해 더욱 눈길을 끈다. 더불어 서울시립미술관은 서울시내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어 지리적 접근성과 주변 환경의 이점 등은 가족 단위 관람객에게 큰 환영을 받기에 충분할 것이다.
한편 특이점으론 전체 총 20순위에 새롭게 진입한 미술관이 무려 4곳이란 점. 여기에서 호암미술관, 조선일보미술관 등이 10위와 11위를 연속 차지하고, 세종문화회관미술관 역시 18위에 등재됐다. 또한 20위인 서울대학교미술관은 학교관련 미술관으론 유일하게 포함되어 앞으로 대학별 전시공간의 활약이 기대되기도 하다. 그러나 올해도 역시 '사립미술관'이 50%가 넘게 강세를 보여 '국공립' 공간에 비해 선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술관과 비교하여 화랑은 어떨까? 먼저 순위를 살펴보면 갤러리현대, 인사아트센터, 가나아트센터, 노화랑, 표화랑이 1위~5위로 조사되었다. 역시 갤러리현대가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2위인 인사아트센터가 3위인 가나아트센터의 계열사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역시 가나아트센터도 2년 연속 2위를 기록한 셈이다. 더구나 2위인 인사아트센터가 대관 위주의 전시공간이란 점을 생각하면 접근성과 대중적인 코드의 전시성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하겠다. 그밖에 특이점은 젊은 유망작가 중심의 꾸준한 기획전을 선보인 인터알리아갤러리(19위)와 대관화랑에서 기획화랑으로 전환한 인사갤러리(20위)가 막바지 순위에 합류했다는 것이다.
사립미술관 선전, 국제무대에 대한 관심 높아
다음으론 "한국미술계를 움직이는 대표적인 인물" 순위. 앞서 말한 것처럼 1위 홍라희 전리움미술관관장에 이어 박명자(갤러리현대 회장), 유희영(서울시립미술관 관장), 이호재(가나아트센터 회장), 표미선(한국화랑협회 회장) 등이 차례로 순위에 올랐다. 홍라희 전관장과 박명자 회장은 각각 이 부문 5년 연속 1,2위를 나란히 기록했다. 특히 작년 <행복한 눈물> 사건 이후 뚜렷한 활동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홍라희 전관장이 여전히 일반인에겐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인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점은 삼성그룹이나 리움미술관의 후면 영향력이 여전히 건재함을 잘 보여준다.
특별히 눈길을 끄는 점은 새롭게 진입한 얼굴들이다. 먼저 아라리오갤러리에 전속작가가 된 원로 박서보 화백(공동6위)이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출판사에서 '한국의 단색화'와 개인화집을 연이어 출판하면서 올해 상반기에 이미 상승세가 점쳐졌다. 이어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장이 9위를 차지해 상위권에 신규로 이름을 올렸으며, 서울옥션 이학준 대표가 20위를,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서성록 회장이 24위, 전시기획자 이원일이 25위, 미술평론가 신항섭과 박영택이 각각 29위와 30위를 이었다. 이중에서 배순훈, 이학준, 서성록의 공통점은 새롭게 CEO에 오른 경우이다. 또한 국제무대를 상대로 눈부신 활약을 보이고 있는 이원일의 등장은 점차 국내보다 국제무대로 미술계의 관심이 이동하고 있다고 짐작되는 대목이다.
미술품 양도소득세 "미술계 나쁜 영향" 89%
이외에 "한국을 대표하는 생존 미술작가"의 순위는 이우환, 박서보, 이종상, 천경자, 김흥수 순이었으며, "2011년부터 미술품 양도소득세 법안이 시행"에 대해선 89%가 '미술계에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란 의견을 표명했다.
지금의 미술시장은 공급자에서 수요자로 무게중심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추세이다. 그만큼 대중의 의견이 예민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설문결과를 토대로 향후 2010년 미술시장의 분위기를 미리 점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제공 [아트프라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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