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제도읽기] 일본 지정관리자제도

효율성 공공성 논쟁의 한복판에 선 문화재단

조정윤 _ 자유기고가

앞으로 계약 갱신에서는 대부분의 공립문화시설이 관리운영 단체를 공모한다고 밝히고 있어 기존 문화재단이 지정관리자로 지정될지는 예측이 불확실한 상황이다. 실제로 기존의 문화재단이 민간과의 경쟁에서 밀려 지정관리자로 지정되지 못해 문화재단 자체가 폐지된 곳도 현재 나타나고 있다. 문화재단의 사업방향 및 조직 재검토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최근 일본의 공립문화시설 현장의 가장 큰 변화는 단연 지정관리자제도(指定管理者制度)의 도입이라 할 수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된 초기만 하더라도 일본의 예술경영학계 및 현장의 반응은 제도 자체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며, 특히 공공성을 기반으로 하는 공립문화시설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논리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제도 도입 후 6년이 지난 현재 지정관리자제도는 일본 공립문화시설 관리운영 및 사업에 있어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제도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예술경영학계와 달리, 현장의 반응은 제도에 일정 수긍하며 시설운영 및 사업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일본은 2003년 6월 지방자치법의 일부가 개정되어 '공공시설의 관리에 관한 제도'가 크게 바뀌게 되었다. 기존에는 공공시설의 관리운영을 위탁할 수 있는 기관은 지방공공단체의 출자법인(문화재단)등 일부 단체로 제한되어 있었으나, 개정 후에는 소위 ';제3섹터'; 즉 문화재단이 아닌 민간주식회사(영리법인), NPO, 예술단체도 관리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게 되는 이른바 지정관리자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일본 정부가 공공문화시설에 지정관리자 제도를 도입하게 된 취지는 ①시민의 평등한 이용의 확보, ②시설효용의 최대화, ③관리비용의 절감, ④관리를 안정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물적·인적능력의 확보 이다. 바꾸어 말하면 공공 문화시설 운영의 공평성, 효율성, 경제성, 안정성을 목적으로 도입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지정관리자제도의 도입과 함께 공립문화시설의 경제성·효율성 대 공공성에 대한 논의는 일본 문화정책 및 예술경영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내건 대대적인 정부의 문화예술지원 예산삭감, 출자법인의 폐지·예산삭감, 사업내용 수정, 문화예술지원에 관한 민간의 역할 강화 및 지방자치단체로의 이관을 주요 골자로 하는 정책적 방침은 이러한 논의에 더욱 불을 붙이고 있다.
 

지정관리자제도를 통해 정보의 다양화, 서비스 향상, 효과적인 관리의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공모 본격 시행 앞두고 문화재단 변화 예고

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자체의 공립문화시설 건립 붐으로 인해 현재 일본 전역에 걸쳐 약 2,903개 시설이 있어 각 지자체별 1.2개 시설, 인구 3만4천명 당 1개의 회관이 존재한다. 그동안 이러한 공립문화시설 운영은 대도시의 경우 문화재단 위탁운영이, 규모가 작은 도시는 직영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경쟁과 경제적 효율성을 목적으로 하는 지정관리자제도의 도입으로 공립문화시설의 운영주체는 비영리민간조직(NPO), 민간기업 등을 포함한 다양한 운영주체가 나타나고 있으며, 기존의 재단 역시 NPO, 민간기업 등과 협력하여 시설을 운영하는 경우도 최근 나타나고 있다.
 

홋카이도 쿠시로예술관, NTT홋카이도 그룹 공동사업체 운영(좌) 토야마근대미술관, (재)토야마문화진흥재단 운영(우)

일본의 공립문화시설협의회(이하 공문협)가 2008년 10월 기준으로 전국적으로 실시한「공립문화시설에 있어서의 지정관리자제도 도입현황에 관한 조사」에 의하면, 전체 조사대상 2,191개 시설 중 현재 지정관리자제도를 도입한 공문협에 가입한 시설은 1,001개(45.7%)로 나타났다. 지정관리자제도를 도입한 1,001개 시설 중 지금까지 위탁관리를 맡았던 지자체 출자 문화재단 등의 공공단체가 다시 지정관리자로 지정된 경우가 735개(73.4%)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민간 사업자 지정은 108개(10.8%)로 나타나고 있으며, 복수의 민간 사업자에 의한 컨소시움 형태의 지정관리자가 운영하고 있는 사례가 89개(8.9%), NPO법인은 36개, 재단과 민간의 공동사업체가 24개(2.4%)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립문화시설 전체의 사업기획 및 프로그램 등을 공공단체가 담당하고 시설관리, 무대기술 업무, 서비스 업무 등을 민간 사업자가 담당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도 새로운 경향이다. 향후 지자체 출자 문화재단 존속의 방책으로 이러한 형태가 증가해 갈 것이라는 예측이 일본 공립문화시설 관계자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지정관리자제도 도입현황과 지정관리자제도를 도입한 1,001개 시설의 지정관리자 종류

실제로 공문협의 2006년 조사에서 공동사업을 포함한 민간사업자가 지정관리자로 지정되는 경우가 166개(13.2%)였던 것에 비해 2008년 조사에서는 204개(20.4%)로 점점 그 수가 늘고 있다. 지정관리자를 어떻게 모집했는지에 대해서는, 반수 이상인 506개(50.5%)가 비공모 방식을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모가 의무적이지 않기 때문에 우선 첫 지정관리자로 종래의 관리 위탁처인 문화재단 등을 지정하기 위해 대다수의 지자체가 비공모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지정 기간은 3년이 479개(47.9%)로 가장 많고, 5년이 299개(29.9%)로 3년 이상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지정관리자 제도의 시행 초기인 현재까지는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문화재단을 지명해 관리 운영을 위탁하는 사례가 많지만, 앞으로 계약 갱신에서는 대부분의 공립문화시설이 관리운영 단체를 공모한다고 밝히고 있어 3년 후, 5년 후의 갱신기에는 일본 문화예술 환경의 양상이 상당히 바뀔 가능성도 있다. 기존 문화재단이 지정관리자로 지정될지는 예측이 불확실한 상황이다. 실제로 기존의 문화재단이 민간과의 경쟁에서 밀려 지정관리자로 지정되지 못해 문화재단 자체가 폐지된 곳도 현재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기존 문화재단은 사업방향 및 조직 재검토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지정관리자제도 시행으로 인해 일본의 공립문화시설 현장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점은 직원들의 고용불안 및 조직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심화이다. 경제적 효율성을 중시하는 지정관리자제도의 도입은 지자체의 문화재단에 대한 재정 및 인력 삭감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 지정관리자로 선정된 문화재단은 3~5년 간의 지정관리 기간 동안 매년 동일한 예산으로 사업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예산의 증액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인력 면에서도 고용불안 및 구조조정의 위기에 노출되게 된다. 만약 기존 문화재단이 공립문화시설의 지정관리자로 지정되지 못할 경우 지자체로부터 인력 감원의 압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지정관리자 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기존의 전문직원은 지정관리자 기간 동안 계약의 형태로 근무를 하게 되어 고용불안 및 조직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평가제도 도입으로 책임성, 투명성 강화

한편 지정관리자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현장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장점도 나타나고 있는데, 바로 문화재단의 미션 및 비전의 재정립, 행정과의 명확한 역할분담, 책임성과 투명성을 바탕으로 하는 평가제도의 도입, 공공성을 중시하는 시민참가 및 기획을 바탕으로 하는 시민문화사업의 추진, 직원들의 업무에 대한 태도 변화 등을 들 수 있다.

그동안 "관공서보다 더 관공서적" "미니 관공서"라고 불리면서 행정보조 산하기관으로 전락한 문화재단의 역할에 대한 회의론은 공립문화시설의 지정관리자제도 도입의 간접적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현 상황에 재단의 미션 및 비전의 재설정을 위한 움직임이 대도시의 문화재단을 중심으로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특히 설치 지자체와 기존 문화재단의 역할과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 역시 주요 과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현행 지정관리자제도의 경우 시설에 복수의 지정관리자 지정이 가능하므로, 설치 지자체는 시설관리, 무대관리, 프로그램 운영, 경영관리 등의 관점에서 복수의 지정관리자를 선정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기존 문화재단에서 현재의 업무 역할, 업무 범위, 업무 분석 등 조직 운영의 재검토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월간[지정관리자제도] 지정관리자제도에 대한 교육, 정보 등을 제공최근 도도부현(都道府県)이나 정령지정도시(政令指定都市) 등 대도시의 문화재단은 복수의 문화시설을 제휴하는 등 종합적인 문화진흥을 위한 문화진흥재단을 검토하고 있다. 문화재단의 전문성, 독립성을 높이고 지방공공단체의 문화진흥 전반에 걸쳐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즉, 문화시설의 운영 관리 이외에, 조사 연구, 예술단체지원 등의 중간 지원 업무, 공립문화시설 이외에서의 문화진흥 시책, 사업의 기획·실시·평가와 동시에 설치 지자체의 문화정책이나 문화진흥계획 등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제안을 하는 등의 역할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 제도의 도입과 함께 일본의 문화재단은 미션 및 비전에 근거한 조직의 평가제도 도입을 통한 상시적인 조직 진단 및 분석을 통해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고 있다. 평가를 전제로 하는 지정관리자제도의 도입과 함께 문화재단은 지자체와의 협약을 통해 재단의 사업, 재정, 인사, 운영 등에 관한 재단의 목표를 명확히 하고 있다. 이는 제도 도입 전 자동계약 연장으로 모니터링, 전문가 평가, 내·외부평가 등 전문적인 평가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던 재단의 상황을 크게 변화시켜 놓았다.


지정관리자제도 도입 후 참가·육성사업 활발

지정관리자제도 도입 후 문화재단의 사업운영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참가·육성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공립문화시설이 시설의 대관과 감상형 및 보급형 자주사업(우리나라 기획사업에 해당)을 통한 감상사업의 위주였다면, 지역 주민이 직접 예술작품에 참가하는 시민참가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지정관리자제도가 도입되면서 경제적 효율성에서 우세를 보이는 민간사업자와의 경쟁에서 문화예술의 공공적 측면을 부각하기 위한 문화재단의 대안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끝으로 지정관리자제도의 도입으로 위기감을 감지한 직원들의 업무에 대한 자세가 바뀌고 있다. 불평·불만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기보다는 조직 내 제도에 관한 의견교환, 상하관계의 소통, 재도약을 위한 업무에 대한 열정이 조직 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아마도 이는 일본인의 ';혼네';(本音), ';타테마에';(建前)의 본성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혼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겠다(타테마에)"는 직원들의 모습이 일본의 공립문화시설 현장에서 느껴지고 있다.





조정윤  

필자소개
조정윤은 고려대학교 독어독문과를 졸업 후, 영국 Greenwich University, City University에서 예술경영을 수학하였으며, 성균관대학교 공연예술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PMG KOREA 공연기획팀에서 해외공연을 담당하였으며, 부천문화재단 문화사업팀을 거쳐 고양시 문화예술과에서 문화예술 전문위원으로 근무하였다. 일본국제교류기금 연구펠로우로 한·일 지역문화재단 조직운영을 연구, 조사하였으며, 현재 일본에서 일본의 공립문화시설, 지역문화재단, 예술경영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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