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 | 미술용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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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 (권고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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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구분 | 미술용어 | ||||||
개념정의 | 한국의 첫 번째 초상사진은 1863년에 동지사은사(冬至謝恩使)로 중국에 갔던 이의익(李宜翼)과 수행원들이 베이징의 사진관에서 촬영한 것이다. 한국 내에서 사진 촬영은 1883년에 김용원, 1884년에 지운영이 촬영국을 설립한 이후에 가능해졌다. 김규진이 1900년 무렵부터 사진술을 배워 1905년에 경운궁에서 고종의 초상사진을 촬영하였으며 1907년부터 천연당사진관을 개설하고 본격적으로 초상사진 영업을 하였다. 터럭 한 올도 다르지 않게 그리는 ‘논화형사(論畵形似)’의 정신을 실현하는 초상화에 대한 오랜 전통은 근대 초기에 초상사진을 수용하는 데 기반이 되었다. 채용신의 초상화 제작 광고문에는 직접 오기 어려우면 사진을, 사진이 없을 경우 사진사를 보내어 ‘박아’오겠다는 내용이 있다. 이 시기에는 사진은 곧 초상사진으로 인식될 정도로 초상사진의 비중이 높았던 것이다. 초기 초상사진은 초상화처럼 전신상이 주를 이루었으나 점차 얼굴을 강조하는 반신상 초상사진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 ||||||
개념정의(영문) | The first portrait photograph in Korea was taken at a photography studio in Beijing by the retinue of Yi Eui-ik, who visited China as the dongjisaeunsa in 1863. Photography was then introduced to Korea when Kim Yong-won and Ji Un-yeong established photography studios in 1883 and 1884 respectively. But after the Gapsin Coup, photography underwent a period of stagnation as the public destroyed studios out of resentment for modern technologies imported from the West. Following the First Sino-Japanese War, commercial photographers from Japan opened studios in Korea, and began to take portrait photographs. Among Korean photographers, Kim Gyu-jin began learning photography, and in 1905, he took a portrait photograph of Emperor Gojong in Gyeongungung. In 1907, he opened the Cheonyeondang Sajingwan, starting a portrait photography business. The foundation for the adoption of portrait photographs had been established by the historic tradition of portraiture, which embodies the idea of nonhwahyeongsa, an exacting depiction that replicates everything down to a single hair. Portraits comprised such a significant portion of photography at this time that the idea of photography itself was directly equated to portrait photographs. However, the process of taking, developing, and printing a photograph was very expensive, and photography was primarily the domain of the upper class. Furthermore, early portrait photographs, like traditional portraits, depicted the entire body, but half-length portrait photographs soon became the primary form. | ||||||
개념정의(중문) | 韩国第一幅肖像写真是作为冬至谢恩使前往中国的李宜翼及其随行人员于1863年在北京的照相馆所拍摄。韩国国内的写真摄影则是在1883年金庸源和1884年池云英开设摄影局为起点。甲申政变后,因民众对西方传入的近代物品产生反感,摄影局因此遭到破坏并陷入停滞期。日清战争(中日甲午战争)前后日本职业摄影师进入韩国开设了照相馆,并正式开始拍摄肖像写真。韩国人中,金圭镇从1900年前后开始学习摄影技术,1905年在庆运宫为高宗拍摄了肖像写真,1907年起始开设了天然堂照相馆正式经营肖像写真。力求实现分毫不差\"论画形似\"精神的肖像画在韩国有着悠久的传统,这也成为近代初期肖像写真得以被接纳的基础。在这一时期,肖像写真占据绝对比重,以至于人们普遍认为“写真”即“肖像写真”。 但由于拍摄、显像與洗片费用高昂,写真摄影以特权阶层或富裕层为主。早期的肖像写真多以类似于肖像画的全身像为主,后逐渐演变為强调面部的半身像肖像写真。 | ||||||
개념정의(일문) | 韓国初の肖像写真は、1863年に冬至使(ドンジサ)兼謝恩使(サウンサ)として中国に行った李宜翼(イ・ウィイク)と随行員たちが北京の写真館で撮影したものである。韓国内での写真撮影は1883年に、金鏞元(キム・ヨンウォン)、1884年に池運永(ジ・ウニョン)が撮影局を設立してからである。しかし、甲申政変以後、西洋から入ってきた近代文物に対する民衆の反感が高まり、撮影局は怒った民衆の手に破壊され沈滞期を迎えた。その後、日清戦争前後に韓国入りした日本人カメラマンが写真館を開き、本格的に肖像写真を撮影し始めた。韓国人としては金圭鎮(キム・ギュジン)が1900年頃から写真術を学び、1905年に慶運宮で高宗(コジョン)の肖像写真を撮影した。 金圭鎮は、1907年に「天然堂写真館」を開設して本格的に肖像写真の営業を行った。一本の毛さえも逃さず描く「論画形似」の精神を実現する肖像画に対する長年の伝統は、近代初期に肖像写真を受け入れる上で基盤となった。この時期には写真イコール肖像写真と認識されるほど、肖像写真の比重が高かった。しかし、撮影、現像・焼き付けの費用が非常に高く、特権層や富裕層を中心に写真撮影が行われた。また、初期の肖像写真は肖像画のように全身像が主だったが、次第に顔を強調する半身像の肖像写真が主となっていった。 | ||||||
관련용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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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닫기한국 미술의 근대, 현대 시기 상정의 모호함과 대상 용어의 시기적 범위를 명확히 제공하기 위해 ‘20세기’로 한정하였으며, 용어 선정에 있어서 근대와 현대의 비중은 각각 30:70으로 구성하였음. 동시대 한국미술과 관련된 다양한 미술운동 및 단체 정보와 동향을 충실히 반영하고자 하였음
미술용어번역유형 | 정의 | 번역사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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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역 | 한국어의 원음을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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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응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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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역 | 해당 용어의 의미를 중심으로 풀어 번역한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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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역 | 한 용어의 전부요소와 후부요소가 각기 다른 번역 유형으로 번역된 경우 (음역+대응역, 음역+의미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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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및 기관 | 번역사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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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 association, society |
**회 | society, institute |
**동인회 | associates (colleague, 등과 같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임) |
**연립 | coalition |
**미술회 | association, institute, school |
**원 | academy, school |
번역유형 | 정의 | 번역사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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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응역 | 해당 언어권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대응어로 번역한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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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응역 /한자역 |
원문의 형식적 특징을 유지하여 번역한 경우 (서양에서 유래하였으나 한자 미술용어인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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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역 | 원문의 형식적 특징을 유지하여 번역한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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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역 | 해당 용어의 의미를 중심으로 풀어 번역한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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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역 | 한 용어의 전부요소와 후부요소가 각기 다른 번역 유형으로 번역된 경우 (음역+대응역, 음역+의미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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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유형 | 정의 | 번역사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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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응역 | 해당 언어권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대응어로 번역한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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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역 | 원문의 형식적 특징을 유지하여 번역한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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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역 /한자역 |
원문의 형식적 특징을 유지하여 번역한 경우로서 일본식 한자로 변환한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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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역 | 해당 용어의 의미를 중심으로 풀어 번역한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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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역 | 한 용어의 전부요소와 후부요소가 각기 다른 번역 유형으로 번역된 경우 (음역+대응역, 음역+의미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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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역 | 한국어의 원음을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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