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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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 |
국문 백만양화회
영문 Baekman Western Painting Association (Baekmanyanghwahoe)
한문 白蠻洋畵會
중문 百万洋画会
일문 白蛮洋画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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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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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1930년에 일본 도쿄에서 유학하던 김용준(金瑢俊), 길진섭(吉鎭燮), 구본웅(具本雄), 이마동(李馬銅), 김응진(金應璡)이 결성한 단체이다. 김용준은 결성 당시에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프롤레타리아 미술을 비판하고 후기 인상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등과 같은 서양 미술 사조를 자유롭게 추구할 것을 선언했다. 이러한 입장은 곧바로 프롤레타리아 미술을 지향하던 정하보(鄭河普)의 비판을 받았다. 계획했던 전시회 개최가 무산되었고 이후로 별다른 활동을 펼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미술 사상이 활발하게 개진된 당시 한국 화단의 상황을 잘 보여준 단체이다. |
소개(영문) |
A group formed in 1930 by Kim Yong-jun, Gil Jin-seop, Gu Bon-ung, Lee Ma-dong, and Kim Eung-jin, who were studying in Tokyo, Japan. Kim Yong-jun criticized proletarian art in an article that he wrote for a newspaper, and he declared that he would pursue the trends of Western art such as Post-impressionism, Fauvism, Cubism, and Surrealism. His position was immediately criticized by Jeong Ha-bo, who supported proletarian art. An exhibition planned by the group subsequently fell apart, and the group remained inactive, but it was an example of the Korean art community of the time, and the production of diverse perspectives on art within. |
소개(중문) |
指1930年由在日本东京留学的金瑢俊、吉镇燮、具本雄、李马铜、金应琎成立的艺术团体。成立当时,金瑢俊通过他发表在报上的文章批判了普罗艺术,宣布将自由地追求后印象主义、野兽主义、立体主义、超现实主义等西洋艺术思潮。但这一主张立刻受到了郑河普的批判,他追求普罗艺术。虽然策展落空,之后也没有开展过特别的活动,但该团体充分体现了当时韩国画坛各种艺术思想百花齐放的情况。 |
소개(일문) |
1930年に日本の東京に留学していた金瑢俊(キム・ヨンジュン)、吉鎭燮(キル・ジンソプ)、具本雄(ク・ボヌン)、李馬銅(イ・マドン)、金應璡(キム・ウンジン)が結成した団体。金瑢俊は、結成当時に新聞に寄稿したコラムでプロレタリア美術を批判し、後期印象主義、フォーヴィスム、キュビスム、シュールレアリスムなどの西洋美術思潮を自由に追求することを宣言した。こうした立場は、すぐにプロレタリア美術を志向していた鄭河普(チョン・ハボ)の批判を受けた。計画していた展示会の開催が中止となり、その後これといった活動を展開することはなかったが、様々な美術思想が活発に開陳されていた当時の韓国画壇の状況をよく示している団体である。 |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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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용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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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
「백만양화회」(서유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13); 『한국근대미술의 역사』,(최열, 열화당, 2015), p.261p |
관련용어 |
구본웅(具本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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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섭(吉鎭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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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金瑢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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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진(金應璡)
,
이마동(李馬銅)
구본웅(具本雄), 길진섭(吉鎭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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