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 |
미술용어 |
표기 (권고안) |
국문 고구려 고군벽화
영문 Goguryeo Ancient Tomb Mural
한문 高句麗古墳壁畵
중문 高句丽古坟壁画
일문 高句麗古墳壁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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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구분 |
미술용어 |
개념정의 |
3세기 말부터 고구려가 멸망하는 7세기 중반까지 그려졌는데, 현재 알려진 수량만 100기가 넘는다. 근대기에 일본이 식민사관을 확대하기 위하여 고구려 고분벽화를 집중적으로 조사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다량의 모사화(模寫畵)를 제작하였다. 조사 결과가 공개되자 고바야시 고케이(小林古徑), 이토슈호(伊藤秋畝)를 비롯한 많은 일본의 미술가들이 고구려 고분벽화의 표현 방식과 모티브를 수용하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월북한 김용준이 연구결과를 내놓았고, 역시 월북한 정현웅이 벽화 모사에 헌신하였다. 현대 한국미술에서는 사신도, 무용하는 인물, 수렵도, 각종 신화 속 존재들이 전통의 키워드로 사용되기도 한다. |
개념정의(영문) |
Goguryeo Ancient Tomb Murals were continuously produced from the late third century to the mid-seventh century, at which time the Goguryeo kingdom fell. There are over 100 known tomb murals in Korea. These murals were produced to commemorate the afterlives of tomb owners. Murals from the late third century to the early sixth century usually depicted the owner’s portrait, his life, and house. This tendency shifted to depictions of animals of the four cardinal directions (sasindo) due to the popularity of Taoism from the mid-sixth century to the mid-seventh century. During the colonial period, Japanese scholars examined the Goguryeo Ancient Tomb Murals in detail. As a result, many copies were produced and publicly disseminated. When the research was publicized, many Japanese artists, such as Kobayashi Kokei and Ito Shuho, adopted the expressive style and motifs of Goryeo ancient tomb murals. In contemporary Korean culture, paintings of animals of the four cardinal directions, dancing figures, paintings of hunting, and diverse mystical figures are considered as all representative of the Goguryeo tradition. |
개념정의(중문) |
高句丽古坟壁画从3世纪末始一直延续到高句丽灭亡的7世纪中期,现在仅是已知数量就超过百幅。这些壁画是为颂扬墓主人的死后世界而创作。3世纪末到6世纪初的壁画主要描绘了墓主人的肖像和生活样貌,以及其宅邸和周边万象等,而6世纪中期到7世纪中叶,随着道教的兴起,道教的防卫神--四神成为了壁画的主题。到了近代期,日本为扩大殖民史观,对高句丽古坟壁画进行了集中调查,在此过程中制作了大量临摹画。调查结果公开后,小林古径、伊藤秋亩为首的众多日本美术家们便接受高句丽古坟壁画的表现方式和主题。在现代韩国美术中,四神图、舞者、狩猎图以及各种神话中的存在也被視為传统的关键词。 |
개념정의(일문) |
高句麗古墳壁画は、3世紀末から高句麗が滅びる7世紀半ばにかけて描かれたもので、現在知られている数だけで100点を超える。これらの壁画は、墓の主の死後の世界を称えるための目的で描かれたものである。3世紀末から6世紀の初めにかけては墓の主の肖像と生活の様子、邸宅と周辺の風景などが描かれたが、6世紀半ばから7世紀半ばにかけては道教が盛んになったため道教の守り神である四神が主な題材となった。近代期に日本が植民主義史観を拡大するために高句麗古墳壁画を集中的に調査し、その過程において大量の模写画が制作された。調査結果が公開されると、小林古径、伊藤秋畝をはじめとする多くの日本の美術家が高句麗古墳壁画の表現手法とモチーフを受け入れている。現代、韓国美術においては、四神図、踊る人物、狩猟図、様々な神話に登場する存在が伝統のキーワードとして使用されている。 |
관련용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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