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딧, 다시 그린 오늘의 이야기
“사전에는 훌륭한 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오만가지 단어들이 다 실려 있지만, 그 안에는 단 한 편의 시도 들어 있지 않다.”
모든 순간을 누락 없이 축적하는 데이터 세상이 도래했습니다. 방대한 비물질 아카이브에서는 다양한 시대, 공간의 이야기와 이미지, 소리와 움직임이 데이터의 형태로 축적되어 종횡으로 펼쳐집니다. 텍스트, 이미지, 소리, 영상은 무한정 웹에 저장되고 뭐든 올라가면 그곳에 영원히 머무르며, 우리는 유튜브, 핀터레스트 등에서 클릭 몇 번으로 지나간 시대, 먼 곳과 낯선 문화권의 사물과 이미지, 정보와 지식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간성과 역사성을 벗은 텍스트와 이미지 자료는 과거-현재, 이곳-저곳의 거리감을 압축하며 (채 겪어보지 않았고, 소유한 적 없었던) 빛바랜 순간들을 지금의 시점으로 가져옵니다.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세상, 이미 너무 많은 것이 존재하기에 그것을 나의 취향대로 선별하는 감각이 수집, 저장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해졌습니다. 누군가는 무수히 축적된 아카이브의 세상에서, 준 에디터, 공급자가 되어 그 무엇을 건져 올려 또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고 아카이빙합니다. 영감 수집 부계정에 나열된 정방형 이미지들, 상황별 추천 플레이리스트, 매일, 매주 그날의 소식을 전해오는 웹진들. 그것은 완연한 생성이 아닌, 취향과 관점에 따른 조합과 재구성이자 의미와 감각을 갱신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전시《에딧 EDIT》은 이렇듯 데이터의 무한 수집과 저장, 편집과 재생산이 가능해진 오늘, 회화의 영역에서 창작의 의미 갱신이 가능하다면 어떤 양상일지 살펴봅니다. 전시는 오롯이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어 종결되는 이야기는 없으며 이미 존재하는, 무수한 이미지와 이야기가 비로소 의미를 갖는 순간은 그것을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금 해석하여 내어두는 순간이라는 관점에서 동시대 회화의 다양한 실천들을 제시합니다. 전시는 자기 바깥에 존재하는 이미지, 서사 세계에 무심히 손을 뻗어 다시 톺아보며 그것을 경유해 새로운 이미지와 서사를 제시하는 창작자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동시대 회화를 다양한 시각문화의 요소가 현재적 의미에서 다층적으로 재구성되는 가능성의 장소이자, 기존 의미의 이탈과 해석의 유희를 포용하는 구성물로 살펴봅니다. 1980-90년대에 태어난 작가 6인 (김도연, 신선우, 왕선정, 우정수, 조민아, 최수련)은 과거의 미술 도상이나 형식, 이야기, 대중문화적 요소, 이국적 문화 코드, 또는 자기 안팎에서 불현듯 다가오는 이미지, 기억, 이야기 파편들을 모아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보고, 읽고, 쓰고, 그리며 새로운 알레고리를 형성합니다.
전시의 제목 에딧 EDIT은 ‘먹다, 낳다’라는 뜻의 라틴어 edere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에디팅, 에디토리얼 실천은 ‘가능성을 가진 재료를 모으고 주관적 사고 과정을 거쳐 재배열하여 의미를 형성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납작하고 평평한 회화면 위에 이미지/이야기 파편을 여러 겹의 레이어로 쌓아내고 수평으로 나열하며 나에게 다가온 것들을 엮고 다시 쓰는 움직임을 상상해봅니다. 익숙함과 명확함, 낯섦과 모호함 사이에서 이전에 없던 이미지 서사를 구축하기. 그것은 단 한 편의 시도 들어 있지 않은 사전으로부터 단어를 톺아보며 새로운 시를 지어내는 마음의 과정이자, 동떨어져 있는 별의 자리를 이어 별자리를 그리는 움직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전시개요
전시기간 : 2024.11.1(금) - 12.28(토)
전시장소 : 우민아트센터
관람시간 : 오전 10시 - 오후 6시 (11-2월)
매주 일요일에는 휴관합니다.
참여작가 : 김도연, 신선우, 왕선정, 우정수, 조민아, 최수련
관람료 : 무료
주최 : 우민아트센터
후원 : 우민재단, 충청북도, 충북문화재단
본 전시는 충청북도, 충북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