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적 예술을 전파하는 실험적 유통 네트워크, 모바일 스테이츠
2007 춘천마임축제 컨퍼런스 ‘호주의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 참관기
고주영(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교류팀)
반짝반짝 5월의 햇살 아래, 이름도 찬란한 춘천에서 딱딱한 학술행사를 듣고 싶지는 않다...고 강하게 생각했지만, 이번 컨퍼런스에는 소양강 앞 숯불 닭갈비보다 강하게 구미를 당기는 ‘모바일 스테이츠’가 소개됐다. 지난 5월 28, 29일 춘천마임의집에서 열린 2007 춘천마임축제 컨퍼런스인 ‘호주의 예술가 지원프로그램’은 발제자로 나선 아츠 하우스, 퍼포먼스 스페이스 등 호주의 공연장이 어떻게 예술가들의 능력을 개발, 함양시키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호주 내에서도 선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의 창작과 공연에 주력하고 있는 두 공연장은 단순히 완성된 작품을 보여주는 공연장의 역할만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창작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의 제공, 혹은 지역사회와 연계한 워크숍 프로그램 등을 통해 예술가들의 창작을 지원하고 있다. 위의 두 개별 공연장의 예술가 개발프로그램에 이어 소개된 것이 ‘모바일 스테이츠’(Mobile States)라는 호주 국내 유통 네트워크이다. ‘예술가 개발 프로그램’이라는 타이틀 아래에 유통과 관련한 네트워크를 소개하는 것이 언뜻 맥이 통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지만, 모바일 스테이츠에 대한 소개를 맡은 투어 전문 기획사 퍼포밍 라인즈 프로듀서의 말을 빌자면, “새로운 형태의 쇼, 새로운 사상 혹은 새로운 예술가들을 받아들이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다면, 그들은 관객들을 개발할 수 없을뿐더러 좋은 작품을 기억에 남을 큰 작품으로 세련화 시킬 기회마저도 결코 갖지 못한다”. 즉 예술가 개발은 예술가들이 원하는 영역-주목받지 못하며, 수익성이 없는 공연일지라도-에서 지속적으로 창작하고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을 주는 것, 바로 유통 자체가 예술가를 개발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양하고 좋은-실은 생경하고 실험적일지라도- 작품을 제공함으로서 유통의 귀결점이 되는 관객 역시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 모바일 스테이츠의 기본적인 신념이다.
퍼포먼스 스페이스 예술감독 Fiona Winning(왼쪽)과 퍼포밍 라인 프로듀서 Harley Stumm(가운데)
모바일 스테이츠는 호주 내 주요 현대공연 전문 공연장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컨소시엄으로 이들 5개 멤버 공연장을 활용하여 대안적 순회공연을 진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땅덩어리가 넓은 호주에서 멜버른 아츠 하우스, 시드니 퍼포먼스 스페이스, 퍼스 현대예술협회, 브리스베인 파워하우스, 살라망카 예술센터 등 다섯 개 멤버기관은 소재 도시 뿐 아니라 그 권역을 아우르는 축이 되어 전국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 멤버기관에 투어를 전문적으로 기획, 진행하는 퍼포밍 라인이 추가된다.) 이 멤버들은 작품 유통과 관련한 합의서를 교환하고, 원격 회의 등을 통해 후보작품을 선정하며, 최종적으로 3개 멤버단체 이상이 찬성할 경우에만 모바일 스테이츠 네트워크를 활용한 투어를 진행시킨다. 공연예산의 경우 호주 예술위원회가 각 지역 멤버공연장으로 지원금을 제공하고, 부족분을 모바일 스테이츠 자체 기금으로 충당한다. 호주의 이 현대공연예술 허브를 이용해 유통되는 작품은 ‘새롭고, 혁신적이고, 실험적인’작품들인데, 역으로 이야기하면, 대중성, 수익성에 대해 보장할 수 없는 중소 규모, 혹은 독립예술가들의 작품이다. 메이저 극단 위주의 공연유통 환경에서, 새롭고 혁신적인 예술, 새롭고 혁신적인 사상을 호주 각지에 전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구책인 것이다. 우리 식으로 보자면, 전국에 있는 작은 독립영화관을 연결하고, 예술영화의 프로그래밍과 홍보를 협력하는 ‘아트플러스 시네마 네트워크’나 역시 각 지역의 대안공간을 모여 릴레이 전시 등을 진행하는 ‘대안공간 네트워크’를 모바일 스테이츠와 비슷한 독립예술의 유통활성화 네트워크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주체의 성격이 공적 기관인지 민간인지, 네트워크의 공식성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으며, 모바일 스테이츠 쪽은 개별 멤버들이 자체 제작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적극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이 멤버기관들은 공연을 보여주는 공간의 기능뿐 아니라, 공연장 컨셉, 모바일 스테이츠의 성격에 맞는 공연을 창작, 제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본인들이 직접 제작한 공연을 이 유통망을 통해 호주 전역에 소개하기도 한다.
‘모바일 스테이츠’가 브랜드 가치를 갖게 될 정도로 발전한 것은, 예술의 의미에 대한 공통적 인식, 완결된 형식이 아닌 끊임없이 발전하는 독립예술의 가능성에 대한 공유, 그리고 무엇보다 아티스트나 멤버 공연장 서로에 대한 신뢰, 비즈니스적 예술과 그렇지 않은 예술의 이분법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발상 같은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 비롯된다. 예술에 산업, 마케팅, 유통 등 비즈니스적인 툴을 적용하는 것이 예술 창작의 의도를 왜곡하거나, 작가의 의도를 훼손하거나,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 있는 태도로 여겨지기 십상인 현실에서 이러한 발상은 외면(혹은 손가락질)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술의 생산-유통-향유의 과정은 각 단계가 순환의 구조이며, 그 안에서도 생산과 향유를 매개하는 유통이야말로 이 순환구조 활성화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성격, 형식의 문화예술이 말 그대로 ‘함께 존재’하기 위해서는, 모바일 스테이츠와 같은 각 영역, 장르별 특성에 맞춘 독자의 ‘시스템’을 만들어 기능시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앞으로 모바일 스테이츠는 해외의 유사한 네트워크와 손을 잡고 해외유통에도 적극적으로 범위를 확장할 생각이며 아시아 지역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우리는 그들의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있는가.
모바일스테이츠(왼쪽)와 퍼포먼스 스페이스의 안내자료
관련 링크 멜버른 아츠 하우스 www.artshouse.com.au 브리스베인 파워하우스 www.brisbanepowerhouse.org 퍼포먼스 스페이스(시드니) www.performancespace.com.au 퍼스 현대예술협회 www.pica.org.au 살라망카 예술센터(호버트) www.salarts.org.au 퍼포밍 라인즈 www.performinglines.org.au 모바일 스테이츠 www.performinglines.org.au/mobilestates.php
관련 정보 호주의 예술가 개발 프로그램 일시 : 2007.5.28(월), 5.29(화), 6.1(금) 오후 2시-5시 장소 : 춘천 아트플라자 주최·주관 : (사)춘천마임축제 후원 : (재)파라다이스 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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