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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일기] 공휴일 인식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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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7-09-07 조회수 2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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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일기]

공휴일 인식장애

그냥 일상적인 업무 관련 통화다. “네, 공연해 극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극단인데요, 나일해 팀장님 계세요?” “(잠시 머뭇거리다가) 네, 오늘은 나일해 팀장님 쉬시는 날인데요.” “아, 그러시군요. 특별히 휴가신건 아니죠?” “네, 내일 출근하십니다.” “네, 감사합니다.” 오늘 벌써 3번째다. 왜 담당자들마다 멀쩡한 평일 날 쉰다는 거지? 오늘은 수요일이잖아. 이쯤 되었을 때 수많은 일정들로 낙서된 달력을 힐끔 쳐다본다. 오늘이 8월 15일. 빨간 글씨? 그렇다면 공휴일? 아뿔싸. 아까 전화통화상으로 당황스러워했던 상대편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면서 괜스레 혼자 휴가 운운하며 따졌던 것이 민망해진다. 삽화

공휴일 인식 장애. 공연이 있는 공휴일을 평일과 같이 생각하는 현상으로써 대학로 공연예술 기획 분야 1년~1년 반 사이에 증상이 심해진다. 평일보다 훨씬 많은 전화업무와 관객응대의 영향으로 공휴일 휴무란 단어를 사전에서조차 지워버리면서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이 일할 것이라는 망상을 불러온다. 공휴일에 동반되는 증상으로는 전화해서 담당자 찾기, 오늘따라 우체국이나 은행 업무 보러가기, 출근시간에 지하철에 사람 없어서 깜짝 놀라기 등이 있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단계 (입사~3개월) 공휴일인데도 부득이한 경우에는(?) 출근해야한다는 것을 알고도 문화예술계에 기여한다는 투철한 정신력으로 입사 면접 시 당당히 공휴일 출근도 불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다. 또한 주변 다른 일을 하는 친구들이 쉬는 공휴일에 출근을 하면서도 “나는 내 꿈을 향해 가고 있어!”라며 자기 설득이 가능한 시기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아직 “나는 공휴일에도 출근한다.”라는 인식이 명확하게 있다. 2단계 (4개월~1년 미만) 공휴일에 부득이한 경우에만 출근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특히 공휴일에 더 심하게 컴플레인 하는 관객분이 있기라도 하면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 퇴근하면서 “이 길이 정말 맞나?”하는 심각한 고민에도 빠지게 되는 시기이다. 사실, 아직 업무에 있어서 그렇게 커다란 장애물이 있거나 중요한 결정이 가능한 시기는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문제에서 여러 심각한 고민이 시작된다. 3단계 (1년 이상~) 자연스럽게 공휴일에도 출근하면서 공휴일 인식 장애를 느끼게 된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출근 구간이 한산해도 혼자 혼신을 다해 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깜짝 놀란다. 복잡한 상황 속에서 관객응대에 유연해지고, 공휴일에 쉬는 것보다 공휴일에 관객이 많은 것이 더 좋아진다. 공휴일 인식 장애, 이 일을 사랑하는 한 어쩌면 평생 가지고 가야할지도 모르겠다.

글 : 꿈쟁이(11dreamer11@naver.com) 익명을 요구한 필자는 대학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했고, 현재 2년차 공연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림 : 알프(holy@alph.pe.kr) 본명은 김남석. 소싯적 공연과 축제를 만드는 일에 필이 팍(!) 꽂힌 적이 있었으나, 생계유지가 힘들다는 판단 하에 조기 전업하였다. 지금은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으나 생계유지는 소싯적보다 더 어려워지고 있다. 천운과 감각 하나만 믿고 사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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