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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소설_파란만장 모모씨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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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7-11-02 조회수 2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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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문화예술 기획자가 사는 법

<소설> 파란만장 모모씨의 이야기

문화예술 기획ㆍ경영 분야의 업무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예술과 관객의 소통을 돕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며 일을 풀어나가는 것이 기획ㆍ경영 분야 종사자의 주된 업무이다 보니, 의사소통 능력은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과제로 느껴지곤 한다. 한번쯤 겪어볼 수 있을 법한 의사소통 문제 상황 중에 하나를 소설로 구성해 보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또 속고야 말았다.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 없어서야. 기획일은 사람 만나는 게 일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큰일이다.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작품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면서 내 새끼에 대한 애정은 평등하다고 어른들은 말씀하시지만 사실 조금 더 아픈 손가락은 있는 것 같다. 좋아하는 배우나 존경하는 연출가와 함께 작업을 하면 나도 인간인지라 애정을 듬뿍 담아 평소보다 더 많이 움직인다. 사실 이번 작품이 그랬다. 스마트한 외모에 꽤나 합리적인 언변을 구사하는 연출가와 작업하게 돼서 얼마나 좋아 했는지 모른다. 그는 글도 잘 쓰는데다 손가락도 가늘고 길다. 가늘고 긴 손가락을 가진 예술가에 대한 로망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오랜만의 선보일 신작이기에 평소보다 신경 좀 썼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게 될 줄 진정 난 몰랐다. #1. 나 이 사람 왜 좋아한 거야? 잘 찍은 사진 한 장에 핵심을 찌르는 카피 한줄 살짝 얹은 포스터를 만드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백 마디 말이 필요 없는 포스터를 만들고 싶어 모시기 힘든 사진작가를 어렵게 섭외했다. 안면은 있어도 부탁드리는 건 작가님을 알고 처음 있는 일이다. “모모씨 부탁이라 하기는 할 건데, 누군데 모모씨가 부탁을 다하고 그래? 별일이네.” “음. 작품보시면 작가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기획자의 순수한 의도에 대해 작가님은 이미 아신다는 듯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 작품이야 뭐 나중에 보면 되고. 나중에 국수 먹게 되면 그때나 연락해.” 나이가 낼모레면 계란 한판이라 그러는지 이 어른은 이렇게 또 줄을 그으신다. “네? 네. 촬영 날 봬요.” 보통 하루면 끝날 촬영, 사흘이나 걸려 끝냈다. 포스터 디자이너와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게 작업을 끝냈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서 과정이 힘들기는 해도 우리 연출님을 위한 일인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연출님도 마음에 드신다면서 수고했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얼마나 보람차고 뿌듯하던지.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 뒤 팀장이 불렀다. “모모씨. 작업을 어떻게 한 거야? 포스터 다시 만들어야겠어.” “무슨 말씀이세요? 그 포스터 좋다고 하면서 디자이너가 누구냐고 물어본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단체도 잘 잡히는데. 누가 다시 만들자 해요?” 직설적인 팀장, 뜸을 다 들인다. 평소 연출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히 드러내서 그런가. “그게 말이지. 연출이 그러던데. 포스터 별로라고. 사진이랑 디자인이 자기 컨셉 하고 다르다던데.” 이건 완전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하여간 연출은 다시 하래. 공연 얼마 안 남았으니 일정 안 놓치게 잘 해.” 이럴 수가. 연출님은 나한테 분명 좋다했는데. 작가섭외하고 디자이너 달래고 하는 건 어쩔 수 없어도 이 배신감은 어찌해야 하나? 정말이냐고 따지고 싶은 맘은 굴뚝이나 진정하고 연출님께 전화를 걸었다. “연출님~. 사진촬영 일정 다시 잡았는데요. 17일 괜찮으세요?”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연출님의 차분하고 온화한 목소리에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모모씨, 포스터 다시 만들려고? 좋은데 왜?” “음. 그게 저. 음. 저….” 당황한 얼굴이 벌게지고 한마디도 못한다. “할 수 없지. 머. 모모씨 하자는 대로 해야지.” 하더니 전화를 뚝 끊으신다. 뭐냐 이 반응은. # 2. 모든 진실을 알 수는 없는 거야? 진정? 사람이란 원래가 본인도 본인을 알기 힘들고 또 이런저런 면을 알게 되는 게 곧 가까워지는 거라 위안 삼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연출님의 신작이라 기자들 반응도 좋고, 협찬도 잘 받고, 중간고사 기간이라 학교 단체작업도 잘 되고. 그런데 또 예기치 않게 사건이 터졌다. 팸플릿에 넣을 제작스태프의 사진을 배우들과 함께 촬영을 하게 됐다. 연출님도 사진을 찍었고, 사진작가님에게 재미있었다고 인사까지 건네며 좋아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연출님에게 전화가 왔다. “모모씨. 늦게까지 수고가 많네. 모모씨한테 할 말이 있어서….” 예전부터 누군가 할 말 있다며 다가오면 가슴이 벌렁거리는 증상이 있는데, 저번 그 일도 있고 해서 긴장하며 전화를 받았다. “예. 무슨 일이신데요?” “응. 미술감독님이 저번에 찍은 프로필 사진, 맘에 안 드신다고 본인 사진 보내신다 하니 그거 받아서 쓰도록 해요.” 별일 아니다 싶어 그러겠다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다 며칠 후 외국에 출장 가셨던 미술감독님하고 통화하게 되었다. “감독님. 잘 지내셨죠? 사진 새로 보내신다고 하셔서 기다리고 있는데요. 혹시 보내셨어요?” “무슨 사진?” “저번에 연습실에서 찍은 프로필 사진이요.” “그 사진 아직 못 봤는데. 알아서 잘 찍었겠지.” 아직 못 보셨다는 감독님 말씀에 당황은 하였으나 연출님이 감독님이 사진 맘에 안 들어 하셨다고 고자질(?) 하기는 그래서 내색은 못하고 사진 파일이 있는 웹하드 주소를 알려드리고 사진을 봐주십사 부탁했다. “모모씨. 재미있고 딱딱한 사진보다 좋은데? 그냥 써.” “아 네. 알겠어요. 감독님. 한국에서 봬요.” 이건 또 무슨 상황인지. 이번엔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전화 끊자마자 연출님에게 전화했다. “연출님, 지금 미술감독님하고 통화했는데, 그 사진 맘에 드신다는데요?” 욱하는 마음을 눌러 담으려 노력했지만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거? 내가 맘에 안 들더라고. 그래서 그 감독님도 맘에 안 들 거라 생각해서 모모씨 생각해서 그런 건데.” “음. 네.” 인생에서는 적절한 타이밍이 중요한데 눈치 있게 대응 또 못한다. 생각해준 건 고마운데 거짓말은 왜하냐고? 내 참. 진실이 뭐야? 내가 알면 안 되는 거야? 사람들 상대하는 일이 언제쯤이면 능숙해 질런지. 어느 일이나 그렇지만 이 일은 특히 더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사소통 능력 배양에 사람과 작품 보는 안목도 길러야 하고, 실무 능력도 쌓아야 하고. 돈도 벌고 연애도 하고 싶고. 할 일은 많은데 되는 건 왜 없나. 파란만장 인생이라 가끔은 정리가 좀 되어 줘야 살만한 인생이 되는데. 그나저나 그는 왜 그랬을까 알고 싶다. 그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필자 소개 정완(貞婉). 대한민국 전체가 축구에 몰두해 있던 2002년, 사람의 마음에 선함과 정화를 주는 공연예술의 매력에 빠져, 잘 다니고 있던 광고대행사를 그만두고 공연 기획에 뛰어들었다. 그 후 4년 간 기획사, 극장, 축제 등에서 프로듀서, 홍보·마케팅팀장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현재는 공연 기획과 잠시 거리를 두고 대학원에서 정책학을 공부하는 중이다. 여전히 애정어린 시선으로 공연계를 바라보는 범 대학로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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