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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스토밍]바다처럼, 바람처럼 자유롭게 울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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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8-01-11 조회수 2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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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처럼, 바람처럼 자유롭게 울렁!

임인자(서울변방연극제 사무국장)

'삼십 세'를 기념하며, 스물아홉 12월에 무작정 떠났던 남도 여행. 발길이 닿는 곳에 머물고, 사람들의 이야기와 삶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 따라 떠나는 여행을 시작한지 올해로 4년째. 올해 12월에도 어김없이 열흘간의 남도 여행에서 막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기획자로서, 삶 혹은 일에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소개하는 이 ‘브레인스토밍’이란 글을 써달라는 전화를 받았던 곳은 전라남도 홍도의 해양 경찰서 안. 홍도를 오가는 배들과 날씨를 점검 하고 계시는 분들과 잠시 수다를 떨고 있던 차였다. 홍도는 목포 인근의 많은 부속 섬 중의 하나로 일반적인 ‘섬’에 대한 고정관념과는 달리 적지 않은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작은 섬 골목길을 오가는 흥미로운 곳이었다. 매일 오전과 오후, 두 번 들고나는 배편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떠나보내는 작은 정박장은 이 섬의 가장 큰 이벤트 장소로, 낯선 이들의 기대와 섬 정착민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이곳의 하루하루는 홍도의 신선한 활력소인 듯 했다. 홍도에 도착해 작은 골목들을 돌아보거나,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을 때, 산에 오르기 위해 길을 물을 때, 주민들은 배를 타고 홍도 주변을 관광하지 않고, 그저 섬을 거니는 내 모습을 의아해하며, “홍도는 볼 것도 없는디, 지금 이 시간에 여기 있당가. 섬 주변의 기암절벽을 보는 것이 여기에 오는 이유여, 이따 3시 넘어 배편이 있응께 꼭 보고 가.”라고 저마다 조언을 해준다. 이런 조언을 들을 때면, 내가 알고 있는 것, 그리고 알아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주어진 것에 대한 인식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시야 안에 무언가에 의해-조언, 혹은 일반적인 기준에 의해- ‘획일화’ 되어 버린 것은 없을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온전히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 가치와 존재를 제대로 읽어내고 있는 걸까. 삶의 터전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지리멸렬한 삶도 사실은 굉장한 이야기이고 가치가 있는데, 모두가 쉽게 몰려드는 좋은 광경, 밖의 모습만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이런 생각이 들어 역시나 섬 외곽의 기암절벽을 감상하는 해양관광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홍도는 해질 무렵이면 섬 전체가 붉게 물들어 붙여진 이름이다. 강한 바람 탓에 붉게 물든 홍도는 볼 수 없었지만 하룻밤 묵었던 숙소의 식당에서 백팔십 포기의 배추를 씻어 소금에 절이는 일을 도와주고 횟감을 얻어 맛있게 먹었다. 다음날 홍도에서 목포로 나오는 배에 몸을 실었다. 올 때는 평안했던 바다가, 갈 때는 무척 출렁인다. 끈적이는 액체처럼 바다가 울렁이고 있을 때, 이 울렁임을 안내하는 달과 바람, 그리고 이것을 거스르며 방향을 잡아가는 힘의 충돌을 생각한다. 이 힘의 벡터 속에서 나는 늘 가슴 깊이 치고 들어오는 울렁거림에 흔들리지 말고 꼿꼿해야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반대로 이 울렁거림을 진정으로 즐기는 법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획자로서 혹은 프로듀서로서, 꼿꼿하게 방향을 세우고만 있을 뿐 가슴을 깊이 울리는 울렁임을 정작 느끼지도 즐기지도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울렁증이 계속되어 배가 다른 섬에 정박했을 때, 잠시 배 밖에 나갈 수 있도록 허락을 얻었다. 그곳에서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승선한 여행자를 만나, 잠시 다른 이의 일상과 여행 이야기를 듣는다. 배에서의 울렁거림은 멈췄다. 여행자의 말에 따르면, 큰 바다를 지나 뭍으로 다가와서 바다의 울렁증이 줄어든 것이라고 했다. ‘큰 바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정착하는 곳은 꽤 안전한 셈이다. 인간의 정착지 어딘가에서 바다의 울렁거림과 거스름을 생각하는 것은 외곽에서 기암절벽을 바라보는 해양관광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스치고 지나갔다. 배는 목포항에 도착했다. 여행자와의 짧은 만남이 아쉬웠지만, 서로 이름 석 자 달랑 주고받고 다음 연을 기약한다. 아직도 울렁거림은 계속되고 있다. 2008년에는 좀 더 이 울렁증을 즐길 수 있기를, 달과 바람의 이끎 속에서도 몸의 리듬을 찾을 수 있기를, 그러기 위해 좀 더 자유로워지기를 소망해 본다. 그리고 이 울렁거림을 올곧게 느낄 수 있도록 감각과 촉수가 자유롭고 예민해지기를 소망해 본다. 필자소개 임인자 / 서울변방연극제 사무국장 대학에서 연극 연출 전공, 대학원에서 예술 경영 전공 공연예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경계를 넘는 작업들과 예술의 공공성 그리고 예술가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오아시스프로젝트예술포장마차 프로그래머, 비주얼씨어터컴퍼니 꽃, 강화정 연출 등과 함께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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