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에어]집중! CoP?!!
CoP? 자발적 공동체? 상황적 공동체!
김유진
차츰 문화예술계에 CoP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많아지는 것 같다. 지금 이 글처럼, CoP에 대한 학술적 연구 요청이 아니라, 대중적 칼럼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CoP가 무엇인지 수월히 알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사실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CoP의 개념적 특성이라는 게 무 자르듯이 기계적으로 구획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번 노력해보도록 하자. 일단, 하나는 알겠다. CoP가 우리에게 왜 이토록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CoP가 문화예술계에서 매력적으로 보이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CoP가 ‘자발적’인 공동체라고 알려졌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과 같은 풍토에서 자발적으로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은 매우 찾기 어렵고,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얻기도 힘들다. 또한 대학에서까지 사회 현실과 유리된 채 육성되고 있던 인재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왔을 때, 이들에게 직장의 상황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재교육 방법도 마땅치가 않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교과서에는 없는 생활 속의 진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거라 생각되는 멘토 제도라든가, 체험적 학습이라든가 이런 것에 끌리고 있다. CoP에 주목하는 이유 역시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 동시에, CoP는 멘토 제도나 체험적 학습보다 급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문제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의 자발적 결사체라는 것이 CoP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철학이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치 기사의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다. 어느 날, 당신의 집에 인터넷 설치 기사가 왔다. 그는 이 간단한 작업을 하는데 곤란을 겪게 된다. 설치 기사는 몇 번이나 컴퓨터를 껐다 켰다 하지만, 익스플로러는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다는 신호만 보내고 있다. 설치 기사는 자신에게 배포된 매뉴얼을 읽어보지만 여전히 답은 찾을 수 없다. 골치가 아파진 설치 기사는 다른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몇 명에게 전화를 걸어본 결과, 한 사람이 해결 방법을 알려준다. 20분이면 끝날 작업이 2시간이 걸렸지만, 어쨌든 마침내 당신의 집에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와우! 당신은 설치 기사들 CoP의 힘을 목격한 것이다. 이 설치 기사들은 아마도 오며 가며, 점심을 먹으며, 서로 인터넷 설치를 하러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수다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러다 친구가 되었을 것이고 연락처를 주고받게 되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들의 연결고리는 분명하게 숫자가 정해진 사람들 사이의 배타적 전유물이 아니다. 어딘가에 등록된 멤버십 같은 게 없어도 내가 일을 할 때, 이들은 믿음과 소통의 느낌으로 내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CoP이다. CoP는 Community of Practice의 약자다. 말하자면, 실행공동체 쯤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명확한 목적을 위해 체계적으로 잘 조직화된 조직(Organization)이 아닌, 현장에서 벌어지는 실행(Practice)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소통에 기반한 공동체(Community)라는 뜻이다. CoP가 잘 운영되면 여기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스스로 학습의 주인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고, 표준화된 교육 방법으로는 대처 불가능한 무수한 상황에 대해 문제해결법을 얻게 된다. 즉, CoP 안에서는 학습과 문제해결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CoP가 역사를 가지게 되면 여기서 교재가 나오기도 하고, 강사가 배출되기도 하고, 선배를 훌쩍 뛰어넘는 후배가 나오기도 하며, CoP 자신이 제도권 안으로 편입되려는 목표를 지닌 조직이 되기도 할 것이다. 예술 분야에서 CoP의 도입은 상징하는 바가 많아 보인다. 시장과 동떨어져 현재까지 보호받고 있었던 예술 분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누군가 과거에 발견한 시대의 감성을, 또 다른 누군가가 정리한 미학사를 통해 예술을 접해왔다. 또한, 과거 영광을 누렸던 격식이나 형식을 재현하는 방식만이 예술이라는 편협한 예술관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예술 분야를 점점 더 현실로부터 격리시키고 있는 중이다. 이 때문에, 대학원에 예술경영 과정이 늘어나고, 뮤지컬 등 예술적인 능력을 필요로 하는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으나, 사실상 예술경영 환경은 나아지지 않고 있으며, 청년 실업의 문제와 만나 오히려 심각해지는 측면도 생기고 있다. 예술 분야의 난감한 ‘지금’ 상황에서 CoP는 많은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CoP는 자발적 공동체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지금, 거기’의 상황을 공유하며 현장 실무자들이 수평적으로 지식을 공유하고 창출하는 ‘상황적’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예술 분야가 이 난국을 타개해 가기 위해서는 현장 실무자들의 지식 공유를 통한 현 상황의 인지, 지식을 매개로 한 연대, 공통의 문제해결을 위한 실행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근원적인 시스템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 동시에 이 과정을 통해 개척 정신을 지닌, 현장 중심의 탁월한 전문가들이 양성되어야 한다. 더욱이 기술의 발달로 예술 기획을 하는 이들에게도 테크놀로지의 습득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실행 중심의 커뮤니티인 CoP는 테크놀로지의 습득 뿐 아니라 이를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응용 방법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연유에서, 예술경영지원센터의 CoP 도입은 눈길을 끈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문제를 발견하고 공유하고 창조하는 CoP의 특징을 이용하여 예술 경영, 기획 전문가들을 양성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제 갓 1년차를 넘긴 이 사업이 어떻게 변해갈지, 최종적인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자못 기대되는 바가 크다. 다만, CoP 개념의 창시자 에티엔느 웽거가 얘기했던 것처럼, CoP를 전략으로 들여올 때 이 황금거위의 배를 갈라 황금을 꺼내려는 무모한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 CoP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율성이 전제되는 만큼, 이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효과적으로 운영해 갈 수 있도록 슬기를 모아야 할 것이다.
김유진 연세대학교에서 조한혜정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니며 공부를 하였고, haja 센터와도 종종 어울려 놀았다. 학교 졸업 후 게임기획과 웹기획을 하다 문화판으로 뛰어들었으며, 이 동네에서 맺어진 여러 인연에 힘입어, 일상적인 창조, 조직의 창조성 증대, 자발적인 커뮤니티(CoP) 등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다. 현재 가치창조공동체 곰곰꼼꼼의 일원이며, 작년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성남시의 문화클럽들을 지원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집중! CoP?!! - 공연예술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바로가기]
[집중! CoP?!! - 사진으로 보는 CoP & 지식파티[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