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에 있어서 조명디자이너의 역할
조명디자이너 유은경
공연에 있어서 조명디자이너의 역할은 작품에 어울리는 채색 작업을 하는 것이다. 무대 위에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조명디자이너는 공연 작품의 내용을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상징적인 이미지로 빚어 무대에 창조적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내는 빛의 마술사이기도 하다. 하나의 공연 작품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작가를 비롯하여 연출, 음악, 배우, 무대, 조명, 음향, 의상, 소품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각자의 분야에서 자기표현을 함으로써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구성원들이 함께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만드는 공동창작 형태의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연출자는 작품에 맞는 구성과 틀을 만들고, 무대디자이너는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며, 그 속에서 배우는 신체를 이용해서 자기의 느낌을 표현하고, 의상디자이너는 배우의 표현을 돕기 위해 배역의 성격이 더 잘 드러나는 의상을 디자인하고, 여기에 세트와 의상에 어울리는 소도구가 들어온다. 그리고 마지막 채색작업은 조명디자이너의 몫이다. 장면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함께 표현하는 데 빛은 더 없이 중요하다. 세트가 아무리 멋지게 세워져도 빛이 없다면 그 형태와 색, 공간의 깊이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고, 의상과 소품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어두운 무대에서 모양과 색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들의 노력은 허사가 될 것이다. 낮과 밤, 즐거움과 슬픔, 사랑과 증오, 현실과 꿈... 무대에서 배우의 연기만으로 이를 표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이 때 빛은 그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빛이 장면에 적합한 분위기를 표현한다면 작품의 감동을 한 층 더할 것이다. 막바지 채색 작업이라고 해서 조명디자이너가 작품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조명디자이너는 작품 초기 단계부터 작품의 방향성을 결정하는데 함께하며, 표현의 극대화를 위해 연출자를 비롯한 다른 분야의 구성원들과 긴밀한 협의와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극장에 맞는 무대디자인이 완성되면 연출이 바뀌기도 하고,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 광원의 위치나 각도가 바뀌는 등 공연예술은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하고, 실험한 후 새로 탄생하는 총체적 작업의 결과물이다. 간혹, 임박한 공연의 조명디자인을 의뢰받는 경우가 있는데, 작품의 모든 것이 짜여진 후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 조명 비추기 이상의 역할을 하기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좀 더 일찍 만나 토의하고 함께 만들어 갔다면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명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훈련은 도제의 형식으로 전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최근 들어 각 대학의 연극학과에 전공이 생기면서 이전에 비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현장으로 배출되는 인재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론적 체계를 갖추고, 실습을 통해 현장 경험까지 갖춘 인재가 많아질수록 공연예술계는 앞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룰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무대는 개인의 원맨쇼 장이 아니다. 공연예술은 작가, 연출가, 음악가, 배우, 스태프 등이 마음과 시간과 노력을 함께 모아 만들어 내는 창작물로써, 텍스트가 같아도 구성원이 달라지면 공연이 달라짐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조명디자이너는 창작자로서의 자질을 갖추는 것은 물론이고, 공연은 여러 사람들이 만나 함께 만들어 내는 공동작업의 결과물임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표현에 있어서는 작가 정신으로 적극적으로 매진해야 할 것이나, 사람과 함께 하는 작업임을 잊지 말고 항상 주변을 배려하는 마음가짐도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동안 잘못된 작업 환경을 고쳐나가는 소명 의식도 함께 갖추어 가자고 말하고 싶다. 내가 있는 이 자리는 내가 영원히 있을 자리가 아니다. 내가 비운 자리는 후배들이, 그리고 그 다음 세대가 이어갈 것이고 또 세대는 바뀔 것이다. 그들이 활동할 환경이 현재보다 나아지기를 바란다. 잘못된 것은 고쳐 나가고 좋은 것은 계속 정착시켜 나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미래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필자약력: 필자 유은경은 연극, 뮤지컬, 오페라, 무용 등 다양한 공연예술 장르의 70여편이 넘는 작품에 조명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일본문화청 지원 해외예술가초청연수를 다녀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