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기획자에게 필요하리라 짐작하는 몇가지 자세
김보경(극단 사다리 기획팀장)
63,048시간. 2,627일. 7년 3개월. 극단 사다리에서 기획자로 일한 시간이다. 이 시간은 극단 사다리에서 일을 했던 모든 기획자들 중에서 가장 길다. 시간으로만 보면 짧지는 않겠지만, 극단의 다른 파트와 비교하면 긴 시간도 아니다. 사다리에는 7년 이상이 15명, 10년 이상이 9명이 있다. 사다리 19년 역사상 기획팀이 극단의 다른 파트에 비해 늦게 출발했고, 10년이 미처 안 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유독 다른 파트에 비해 장기 근속자가 적다. 극단 사다리는 7명 정도의 기획팀을 상시 운영하고 있다. 늘 비슷한 인원수로 운영되고 있지만, 사람 구성은 자주 바뀌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길게는 2년, 짧게는 3개월 정도 일하고 나서 그만두는 사람이 생긴다. 극단의 기획자로 계속 일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기획자로 한 단체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것일까? 그 대답은 극단에서 조금 오랜 일한 선배로서 공연 단체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혹은 일을 시작한 후배들에게 하는 조언으로 대신한다. 기획이 무엇인지 자신만의 정의를 내려라. 기획에는 다양한 업무 영역이 있다. 쉽게 떠오르는 홍보, 마케팅에서부터 영역을 정의하는 업무가 바로 기획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단순히 기획을 하고 싶다고 하지 말고, 기획이 무엇인지 자신만의 정의부터 먼저 내려라. 기획의 어떤 업무를 하고 싶은지, 어떤 기획자가 되고 싶은지를 그려 보아라. 그래야 어느 단체에서 일을 해야 할 지 구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비슷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각 단체마다 기획의 특성과 한계가 있다. 적은 차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큰 격차가 난다. 긴 호흡으로 차후의 일을 결정하는데도 이 기준이 적용된다.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라. 최선이든 차선이든 극단의 기획자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할 때, 그 안에서도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라. 그래야 그 일이 내 일이 된다. 그 생각이 현재와 앞으로 내가 일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진짜로 하고 싶어야 해 낼 수 있고, 하고 싶지 않지만 필요한 다른 일들도 쉽게 할 수 있다. 기획자로 포부는 커다란 어떤 그림을 그리는 일이겠지만 처음부터 그 일을 할 수는 없다. 어느 일이든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작은 일을 못하면서 큰 일을 할 수 없다. 큰 일은 작은 일이 각기 모여서 이뤄진다. 극단의 특성과 자신의 특성을 천천히 꾸준히 파악하라. 기획팀이 있든 없든 극단은 창조적인 작업이 핵심이다. 극단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으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작업의 즐거움을 다른 무엇보다 높은 가치로 삼는다. 극단의 성격은 무대에 올려지는 작품으로 설명될 수 있다. 작품과 모여 있는 사람들이 자신과 잘 맞는지를 천천히 꾸준히 파악하라. 기획자는 극단 내부의 관계를 얼마나 잘 다루고 조직하느냐에 따라 일의 실행 여부는 달려 있다. 서로의 특성에 맞는 적절한 관계 형성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력하는 것이 능력임을 명심하라.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다. 즉, 실수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똑같은 실수를 가급적 빨리 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 된다. 기획이 무엇인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정의내리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내부 사람들과의 관계 뿐 아니라 관객과의 관계도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노력하는 것이 능력임을 명심하라. 3개월 후, 6개월 후, 1년 후 노력해서 나아졌다면 그것이 능력이다. 노력하지 않았다면 하고 싶었다는 것은 거짓말이 된다. 상기 언급한 내용은 선배로써 조언하고 싶은 극단 기획자에게 필요하리라 짐작하는 몇가지 자세들이다. 선배는 정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된 의견을 말한다. 다른 어느 단체보다 극단 기획자로 일하는 후배들에게 이 조언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왕 단체에서 일을 하기로 했으면 경력이 될 수 있도록 최소 3년은 근무하기를 바란다. 극단 기획자로 지망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 앞서 ‘필요한 자세’라고 단호하게 말하지 못하는 소심한 선배의 글은 이것으로 마친다.
사진 설명: '멍석 발표회'는 사다리 배우협의회 주최로 2달에 1번씩 개최되며 누구나 자유롭게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자리이다. 연주, 마임, 연극, 워크샵 발표 등 다양한 형식의 퍼포먼스가 펼쳐지며 창작단체인 극단의 숨은 힘 발견과 단원들의 극단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필자약력: 필자 김보경은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극단 사다리의 기획팀장으로서 극단 사다리의 공연제작을 총괄하고 있다.
극단 사다리 주요 기획 작품: 2000~2006 <이중섭 그림 속 이야기> (서울공연예술제 특별상) 2001. 호주 REM극단 공동제작 <징검다리> 2002~2006 일본극단 가제노꼬큐슈 공동제작 <만남> 한국,일본 공연 2004~2006 예술의전당 공동제작 <꼬방꼬방> 2004~2006 <시계 멈춘 어느날>(2004 서울어린이연극상 기획부분 수상, 2006 올해의 예술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