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
나는 네가 공연장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직업적으로 반복된 활동으로 인한 집착(?)이 있기 마련이다. 이번에는 그 끈질긴 집착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늘은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공연을 보기 위해 공연장 로비에 조금 일찍 도착한다. 정말 오랜만에 일이 아닌 관객으로서 공연장을 찾은 셈이다. 공연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이 묻어나는 관객들의 표정을 한층 여유롭게 즐기면서 티켓을 찾으러 매표소에 도착한다. 오늘따라 관객이 많아 매표를 진행하는 이들의 모습이 훨씬 분주해 보인다. 왠지 남의 모습 같지 않다. 너무나 분주하고 긴장한 나머지 “동전 좀 바꿀 수 있을까요?”라는 사소한 질문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초보분이라도 만나게 되면 공연관람도 관람이지만 대신 일을 거들어주고 싶은 마음조차 든다. 관객들이 질서 없이 몰려들 때에는 줄을 세워야할 것 같고, 매표하는 분이 예약한 티켓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는 “타 예매처를 확인하거나 미출력 티켓을 확인 해봐야하지 않을까요?” 등의 아는 체가 심하게 저 밑에서 꿈틀거린다. 특히 티켓에 관련해서 심하게 컴플레인을 받고 있는 공연 관계자를 보면, 동병상련의 마음을 어떻게 억누를 길이 없어 누가 공연종사자 아니랄까봐 귀를 쫑긋 세우고 그 컴플레인 현장을 티가 나게 한참을 빠르게 맴돌면서 끼어들 상황이 없는지 확인한다. 여기까지는 그냥 애교다. 내가 구조를 알고 있는 공연장인 경우에는 문제는 한층 더 심각해진다. 화장실이 어딘지 몰라서 물어보는 관객에게 나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무심코 “화장실은 이쪽입니다.”하고 상냥하게 끝을 올려 말하고 나서는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다. 내 뒤에 있던 안내원은 날 보고는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아마 뭐하는 사람일까 싶었을 거다. 특히 공연장 안에서 그것은 절정에 달하는데, 좌석을 잘 찾지 못하는 관객들이 있으면 티켓을 곁에서 흘끔 쳐다보고는 재빨리 좌석 위치를 파악하면서 “안내해드리겠습니다.”하고 불쑥 튀어나오는 것을 여러 번 속으로 접어 넣는다. 이때부터 시작하여 공연을 보는 중에 사진기를 몰래 꺼내드는 관객이라던가, 가방 속에 숨겨온 간식을 꺼내 놓는 사람들이라던가, 앞좌석에 다리를 올려놓는다거나 하면 관계자도 아닌데, 공연관람 내내 안절부절못하며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공연관람을 마치고나서 배우들의 커튼콜을 보면서도 왜 공연이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지. 이렇게 공연을 보고 나면 왠지 오늘 공연진행을 맡았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 이 끈질긴 직업병이여! 글 : 꿈쟁이(11dreamer11@naver.com) 익명을 요구한 필자는 대학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했고, 현재 2년차 공연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림 : 알프(holy@alph.pe.kr) 본명은 김남석. 소싯적 공연과 축제를 만드는 일에 필이 팍(!) 꽂힌 적이 있었으나, 생계유지가 힘들다는 판단 하에 조기 전업하였다. 지금은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으나 생계유지는 소싯적보다 더 어려워지고 있다. 천운과 감각 하나만 믿고 사는 편.